강미란 수필가
신분증 한 장이면 나는 증명된다. 사진, 이름, 번호, 주소. 몇 줄의 정보가 나를 설명하고 사회 속 나를 구별 짓는다. 그러나 그 얇은 카드 한 장이 내 삶의 무게와 고통, 꿈과 흘러온 시간을 다 담을 수 있을까.
사회가 인정하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신분증은 나를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지만, 동시에 내 삶의 고유한 결을 지워버린다. 공공기관 창구나 병원 접수대에서 신분증을 내미는 순간 그것은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의식이 된다. 신분증이 없으면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신분증 속의 나는 이름과 번호, 고정된 표정 하나로 규정된 ‘기록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나는 매일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다. 때로는 거울 앞에서 혹은 창구에 서 있는 순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정말 나일까.”
사회가 부여한 이름과 번호가 전부인 듯 살아가지만, 그 바깥에는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나의 결들이 있다. 우리는 종종 그 얼굴을 외면한 채 살아가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다른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러 번의 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학생, 부모, 퇴직자, 시어머니, 할머니… 이름과 번호만으로는 담기지 않는 긴 연대기를 살아간다. 신분증도 변한다. 플라스틱 카드에서 모바일 신분증, 생체인식으로 ‘나’를 규정하는 방식이 바뀌듯 삶의 얼굴도 계속 바뀐다.
나는 늦은 나이에 신분증 바깥에 머물던 꿈 하나를 꺼냈다. 박사과정에 도전한 것이다. 나이 많은 학생의 입학을 의아해하던 창구 직원이 물었다.
“학생 본인이신가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나이 든 새내기입니다.”
학번이 새겨진 새 학생증은 속삭이듯 말했다.
“너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다.”
입학을 결심하기까지 망설임도 많았다. 그러나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내 안의 작은 불빛 하나를 믿고 길을 내야 할 때가 있다. 결국 나를 밀어준 건 내 안에 남아 있던 용기였다. 신분이란 단지 소속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변화하고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을 그때 알았다.
신분증은 하나의 기호일 뿐이다. 그것은 내 존재의 출발일 수는 있지만 결코 전부가 아니다. 진짜 신분증은 오늘도 살아내려는 우리의 단단한 발걸음이다. 그 꾸준하고 조용한 걸음이 나를 가장 선명하게 증명한다. 그리고 그 걸음은 숫자도 사진도 아닌, 서로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있는 표정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