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재(金浩然齎 1681~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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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샘에 비친 별빛 맑은 밤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 자(三尺)의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
흰머리에 나이만 더 차는구나.

김호연재는 우리 대전에 연고를 갖고 있는 여류시인이다. 조선시대에 여성이 교육이나 문학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때에도, 사대부 집안 며느리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탄탄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니 놀랍다. 김호연재는 명문 신 안동 김씨 가문의 후손으로 역시 명문가인 은진 송씨 송요화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유교 사회 조선에서 논란이 될만한 시들을 썼다. 그 일례로 시장의 장사치들을 비난하는 시를 써서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시에는 이렇듯 현실 비판적인 것이 있고 페미니스트적인 내용도 담겨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연유로 김호연재의 시는 세간에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깊은 밤에 쓴 이 시는 전경후정前景後情의 기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시는 전반부에 배경을 설정하고 후반부에 감상이나 주제를 배치하는 창작방법을 구사한다. 그러므로 앞부분에 풍부한 형상성이 펼쳐져 있다. 그것을 배경으로 후반부에 가면 주제의식을 담았다. 이 시도 4행까지 깊은 밤의 정경을 묘사하였다. 달빛, 산, 샘, 별빛, 안개, 바람, 댓잎, 비이슬, 매화 의 이미지가 연출하는 고요함 속에 생의 순간성이 드러난다. 시인은 인간 삶의 힘겨운 내면을 5행에 "삶이란 석자 시린 칼"에 집약하고 있다. 삶이라는 시린 칼 앞에 마음은 한 점 등불. 그것이 우리 생이고 우리들 모두의 존재론적 모습인 것이다.

-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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