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꽃만 봤지
피어나
환해지는 것들만 봤지
환해서 시린 눈망울
눈물 없이 무너지는 것들
그래도
꽃에만 마음 줬지
잎만 헤아렸지
떡잎 새잎 반짝이며 돋는
연둣빛 별들
쏟아 낼 일 모른 척했지
꽃빛에 새겨진 눈주름
잎맥에 잠간 붉은 혀
품었던 기억 떨쳐 내느라
가지 끝 살 올리는
비정한 마음 듣지 못했지
더듬더듬 길을 내는
뿌리의 울음
흔들리는 땅 밟고 서서
나는 자꾸 심장만 들썩였지
폭염 속에 땡볕을 밟고 서니 언제 봄이 왔었나 싶다. 초록이 깨어나는 순간의 경이로움이나 감동은 사라지고. 이미 우리는 봄을 깡그리 잊었다. 엊그제 폭우로 난 사태에 사람이 죽고 마을이 묻히기도 했는데. 그새 그것도 다 까먹은 채 찬 기운만 찾아 몰리고 있다. 그러다 우리는 또 가을이 오면 거기에 빠져 여름도 잊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겨울을 내다볼 것이니. 겨울 속에 폭설이라도 만나 도로가 막히고 교통이 두절되면 이내 우리는 발을 동동거리며 겨울에 굳게 갇혀버릴 것이다.
하여 시인은 봄을 자책하고 있다. 봄은 모든 것의 근원이니까. 자연의 출발 그 원점이니까. 봄에 자신은 꽃피어 환해지는 것들만 봤다고. 환해서 시린 눈망울 눈물 없이 무너지는 것들 속에도 꽃빛에만 마음 주었다고. 겉으로 눈길 닿는 곳에 잎만 헤아렸다고. 떡잎 새잎 반짝이며 돋는 연둣빛 별빛 쏟아낼 일도 모른 척. 우리 매번 품었던 기억 떨치느라 그 안에 잠긴 그늘 살피지 못할 것. 이제 인류에게 심각한 것은 기후 위기다. 우리에게 몰려온 기후 위기는 진실로 우리가 봄을 깊게 바라보지 못한 그 이유. 자연과 땅의 숨결 잘 살피지 못한 까닭이다.
-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