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선(1941~2001)
내 귀를 비우고 싶네.
거리의 소리가 너무 높아서
진실도 거짓도 알기 어려워
내 귀는 쉬고 싶네.
내 귀를 이젠 바다를 향한
보석함으로 두고 싶네.
사람의 파장을 뛰어넘어서
다른 떨림의 울림 속에 들어가 살고 싶네.
풀잎 사이에 내려놓고
풀잎들의 많은 목소리나 듣고 싶네.
나무들의 숲으로 가서
짐승과 별과 달과 바람이 얼굴 비비며
속삭이는 나라의 소리를 듣고 싶네.
내 귀를 이젠 비우고 비워서
떨리는 사랑의 소리나 가려 듣고 싶네.
사람의 나이가 60에 이르면 이순(耳順)이라 했거늘. 듣는 대로 다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인데. 그러니 귀가 순해진다는 것으로 파악해도 될 듯하다. 그래서 이 세상의 오만가지 소리를 다 가려 새겨듣고 그것을 이해하면. 그것에 거스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런데 내가 이순을 넘어서 보니 그 말은 우리에게 터무니없이 너무 멀고 멀도다. 작은 서운함에도 언제나 삐치기 십상이고 상대의 말에 내 감정을 덧씌워 오해하기 일쑤니. 오호 통재라. 물론 이 말이 처음 명명되었을 때는 지금의 우리와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지만.
하여 시인은 이제 귀를 쉬고 싶다고 선언한다. 거리의 소리들은 너무 높아서 거짓과 진실을 가리기 어려우니. 바다를 향해 귀를 열어두고 싶다고. 나무숲으로 가서 자연의 소리에나 귀를 열어두고 싶다고. 그렇게 하여 귀를 비우고 비워 이제는 떨리는 사랑의 소리나 가려듣고 싶다고. 그러니 우리 이제 우리 몸의 일부라도 매년 돌아가며 안식년을 주도록 해야 할지. 올해는 귀를 쉬고. 내년에는 눈을 쉬게 하고.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손을 쉬게 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 몸의 완전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