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심리상담학부 교수

[충청투데이 이용민 기자] 집은 삶의 안정을 담보하고, 공동체와 연결되며, 돌봄과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지 벽과 지붕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제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됐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거는 곧 돌봄이며, 주택은 곧 공동체’라는 원칙을 실현해 나가는 일본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치매 환자와 비치매인이 경계를 허물고 어울리는 공간인 오렌지 카페는 참여자의 배경이나 병력을 알 수 없어, 자연스럽고 수평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곳이다.

고독사 예방을 위한 공동체 기반 묘지 친구 모임, 일본 전통 시 형식인 센류를 활용해 노년의 삶을 유머로 표현하는 실버 센류 문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정서적 자립을 지지하는 시도들이다.

가사 지원, 의료 연계, 자립 생활 등 노인 주거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실버 소비 시장의 확대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일본에서는 50대 이상이 전체 자산의 80%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도시 경제의 주요한 소비 주체로, 도시 정책의 방향을 전환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 안심 주택’, ‘공동체 주택’, ‘세대융합형 복지주택’과 같은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 설계나 정서적 연결은 부족하고 여전히 많은 공공주택은 최저소득층을 위한 공간이라는 낙인이 존재한다.

일본을 넘어 한국형 ‘삶의 집’으로 나아가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정서적 리디자인으로 주거를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만남과 이별이 깃든 장소로 재설계해야 한다. 커뮤니티 거실, 공용 정원, 시 낭송 모임 같은 일상의 공동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살아가는 복합 주거 단지에서, 요리를 나누고 스마트폰을 가르치며 서로의 결핍을 메우는 세대 간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고령 친화 UI(상호작용 장치) 등 노인을 위한 정보 접근성 강화도 필수적이다.

오렌지 카페, 실버 센류와 같은 정서적 자립을 돕는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곧 건강한 도시의 심장이 된다. 또 마지막 순간을 고립이 아닌 의미 있는 이별로 맞이할 수 있도록 죽음을 포함한 생애주기 주거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도시의 미래는 집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집은 무엇을 품어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집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도시라면, 진정한 살 집은 함께 살아가는 집이어야 한다.

이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도시만이, 초고령사회에서도 진정 ‘살기 좋은 도시’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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