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무대가 어둠 속에 잠긴다. 객석의 숨결마저 고요해지는 그 순간, 한 사람이 조용히 걸어 들어온다.

카잘 챔버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그녀는 단단히 선 채 손끝을 들어 올린다. 공기 속에 쉼표가 그려지고 마침내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단지 ‘공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보다 한 존재가 어떻게 공간과 사람을 이끄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무대 뒤에는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걸려 있다. 연한 붓 터치와 번지는 색감, 형태보다 감정으로 남는 풍경, 그 앞에서 지휘자는 마치 붓을 들 듯 지휘봉을 들어 올리고 손끝으로 오케스트라의 감정을 천천히 데운다.

비발디의 Concerto alla Rustica가 흐르기 시작한다. 밝고 경쾌한 리듬이 여름 들녘처럼 객석을 감싼다. 지휘자의 손끝은 결코 앞서지 않는다. 오히려 옆에서 감정을 읽고 흐름을 조율하며 음악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이끈다. 지휘자는 직접 소리를 내지 않지만, 그가 있기에 음악은 하나로 엮인다. 무대의 중심에서 조율하며 소리가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이다.

연주가 깊어질수록 나는 그 음악 속으로, 나 자신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자식의 앞날, 부모의 여생, 남편의 크고 작은 선택들 그리고 나 자신의 불안과 상처까지 조율하며 살아낸 시간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도 내 삶의 지휘자였다. 드러나진 않지만 누군가의 리듬을 읽고 조용히 호흡을 맞춰온 날들이었다.

라벨의 Bolero가 절정을 향할 때 나는 그녀의 손끝을 응시한다. 그것은 폭발적이지도 격렬하지도 않다. 오히려 긴장과 여백, 확신과 기다림으로 수십 명의 감정을 하 나로 묶는다. 그 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미 모든 것을 말한 듯하다.

지휘자는 음악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등을 지고 선다.

음표가 아닌 사람의 숨결을 읽고 손끝으로 흐름의 방향을 짚는다. 삶도 그러하다. 무언가를 단정 짓기보다 여운을 남기고, 소리를 내기보다 울림을 기억하게 한다.

공연의 마지막,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내려온다. 마치 모든 말을 마친 후 찾아오는 깊고 단단한 침묵 같다. 소리는 멈췄지만,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그 지휘는 공연을 이끈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공연장을 나서는 길, 조용히 내 마음속 지휘봉을 다시 들어본다. 어설퍼도 좋다. 흔들려도 괜찮다. 한 사람의 손끝이 수많은 날을 지휘해 온 것처럼, 나도 내 삶의 무대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묵묵히 삶의 박자를 이어가고 싶다. 그 고요한 리듬은 오늘도 내 안에서 잔잔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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