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건양사이버대학교 총장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지인들의 프로필사진이 바뀌었다는 알림이 쏟아졌다. 대부분은 GPT가 빚어낸 지브리풍(Ghibli style)의 그림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생성형 AI 기술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토록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었던 시절은 없었다. 나 또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시도해 보았다. 순식간에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으로 변신한 내 모습을 마주했을 때, 놀라움과 즐거움이 뒤섞여 왔다. 자연스럽게 그 앞에서 나의 발걸음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AI를 두고 "생명에 대한 모욕"이라고 일갈했던 철학적 문제의식까지는 아니라도, ‘이렇게 손쉽게,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결과만을 취하는 세상이 과연 옳은가?’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사진 하나, 키워드 몇 개만으로 얻은 이 결과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그리고 그 안에 과정은 어디에 남아 있는지. 조금은 불편하고, 묵직한 의문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내가 어린 시절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서투름을 극복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당연한 순리였다. 처음에는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이 조금씩 나아지고, 마침내 성취라는 보상을 통해 자신감이 피어나는 경험. 돌이켜보면, 바로 그 느린 걸음과 고생의 기억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본질적인 자양분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AI가 만들어주는 손쉬운 결과물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니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정을 통해 배우는 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근심을 떨쳐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AI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AI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고까지 부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AI는 잘 쓰면 우리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잘못 쓰면 결과만 빠르게 베껴내는 편리한 모방 도구에 그칠지도 모른다. 결국 배움의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내가 시도해 보고 부족한 점을 살펴보고 다시 고치며 나아가는 그 힘, AI는 이 과정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누구도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없으면 아무리 멋진 결과라도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배움은 본래 더디고 서투르다. 실패도 하고, 다시 시도해야 한다. 그 안에서 성취감이 싹트고,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도 자란다. 이건 어린이만의 얘기가 아니다. 어른도, 학생도, 모든 학습자에게 해당된다. 이쯤에서 AI로 인한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그려본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아예 대신해 버리고, 인간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과정을 빼앗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AI가 우쭐대는 세상의 중심에서 과정의 가치를 외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