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심리상담학부 교수

[충청투데이 이용민 기자] "당신은 어떤 공간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가?" 최근 EBS 다큐멘터리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를 보며 오랫동안 이 질문에 머물렀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노년의 주거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집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삶의 시간이 스며든 장소이며 우리 존재의 일부다. 나의 흔적이 깃든 기억의 공간에서 우리는 삶의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고 싶어한다. 바로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다. 이는 고령자가 요양시설이나 병원이 아닌, 오랜 시간 살아온 자신의 집이나 익숙한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한 오래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개인의 소망이나 가족의 뒷바라지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동의 과제다.

미국 보스턴의 ‘비콘힐 빌리지’는 주민들 스스로 만든 비영리 공동체다. 50세 이상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고, 연회비를 통해 요가 수업, 독서 모임, 식사 배달, 병원 동행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시설 입소가 아닌 자택 중심의 노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철학적 기반이 있다는 점이다. 지역 자원봉사자와 청년들이 함께 참여해 세대 간 연대도 이뤄지고 있어,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의 ‘돌봄 SOS’와 같은 시범 사업이 일부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지역 편차가 크고, 일부 지원에 머물러 있다.

한국 사회가 취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주거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구조 변경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고, 임대와 자가 여부에 관계없이 ‘에이징 인 플레이스 인증제’를 도입해 보편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 복지관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돌봄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노인 친화 기술의 보급과 디지털 격차 해소도 중요하다. 스마트기기, 원격 진료 키트, 낙상 감지 센서 등을 보급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문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늙음’은 곧 ‘의존’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노년기를 새로운 형태의 자립과 참여로 인식하고, 세대 간 연대가 살아 있는 지역사회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단지 집에 머문다는 뜻이 아니다. 햇살 드는 마루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추억이 깃든 마당에서 손주들의 웃음을 떠올릴 수 있는 삶. 그 평범한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노년의 풍경 아닐까.

이제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디에서 늙고 싶은가? 그리고, 그곳에서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