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걷기’는 인류가 생명을 걸고 선택한 진화적 산물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두 발 걷기를 하며 골반의 크기가 줄어들게 됐고, 인간의 뇌는 출산 과정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미성숙하게 태어난 후 성장시키는 전략으로 발전하면서 이것이 뇌의 가소성으로 이어지게 됐다. 단순히 잘 걷고, 잘 달리기 위한 ‘진화적 도박’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이 있으면서 학습이 가능한 뇌로 진화했고, 결국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 잡았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초인(Ubermensch)’을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했다. 기존 한계를 넘어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인 초인은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니체는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되는 도구로 걷기를 제시하며 "위대한 생각은 걸으면서 나온다"고 말했다. 현대 의학에서도 걷기가 엔도르핀과 같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뇌의 혈류를 증가시켜 집중력과 창의성을 높이고 뇌유래 신경영양인자 생성을 촉진해 학습과 기억력을 증진 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러한 점에서 걷기는 니체가 말한 초인의 도구임이 타당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산책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 상대성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에게 걷기는 창의성의 원천이었고 문제 해결 도구였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혁신가들도 종종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고, 임마누엘 칸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정한 시간에 칸트의 길로 알려진 곳을 산책하며 그의 철학을 완성해 나갔다. 히포크라테스는 걷기를 ‘최고의 약’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현대인은 일상생활 대부분을 가만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보낸다. 걷기의 힘, 초인의 길, 혁신의 길은 엄두도 못 내고 누워서 잡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니체는 "앉아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을 믿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오히려 여기에 더해 우울증, 불면증, 만성피로에 시달리면서 최고의 약까지 잃어버렸다. 공부나 연구, 사업이나 혁신을 이루고 싶다면 걷기를 시작하라. 단 2분의 운동으로도 기억력, 문제 해결 능력, 언어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도 있듯이 걷기를 통해 기억력과 집중력이 향상되면서 예상치 못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니체가 말했고 현대 의학이 증명한 것처럼, 걷기는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되는 경험도 선사할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솔비투르 암불란도(Solvitur ambulando)’라고 외쳤다.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으로, 걷기는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창조와 혁신의 시작점이고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선물이 된다. 우리 모두 걸어보자. 우리는 모두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고, 니체의 초인도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