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호 ETRI 클라우드기반SW연구실 선임연구원

새벽 1시. 한국의 시간과 상관없이 글로벌 오픈소스의 시간은 흐른다. 회의를 주재하고 기여자들의 제안을 검토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4시가 넘었다. "뭐해요? 아직도 안 자요?" 아내의 걱정 섞인 한마디에 문득 생각한다. ‘그러게, 내가 왜 이 시간까지 이렇게 몰두하고 있지?’ 그리고 다시 처음의 다짐을 떠올린다. 필자는 2018년부터 쿠버네티스와 글로벌 오픈소스 재단(CNCF)에서 기여자로 활동해왔다. 쿠버네티스는 구글이 공개한 플랫폼 SW로, 현재 2만 명이 넘는 기여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표적 오픈소스다. 최신 기술이 쿠버네티스를 통해 개발되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수많은 기업과 기관이 이를 활용한다.

2018년, 미국에서 열린 쿠버네티스 컨퍼런스는 전환점이었다. 8천 명이 넘는 참석자들의 열띤 관심과 깊이 있는 기술 논의를 보며, 쿠버네티스가 미래 기술의 기반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관심이 크지 않았다. 거대한 물결 속에 한국인 기여자는 거의 없었다. 아쉬웠다. "그래, 누가 대신해주길 기다리지 말자. 직접 활동하고 주도하자." 7년의 꾸준한 활동 끝에, 필자는 미국에서 쿠버네티스 컨트리뷰터 어워드를 수상하며 주요 기여자로 인정받았고, CNCF 글로벌 앰버서더로 선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여자로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오픈소스 활동을 요구한 사람도, 이를 인정해주는 제도도 없었다. 기술의 가치와 미래를 아무리 설득해도, 연구 과제로 추진할 수는 없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필자는 믿었다. "이 경험과 전문성이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라도 묵묵히 그 길을 걸었다. 예상대로 쿠버네티스는 클라우드뿐 아니라 AI 인프라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정부 R&D에서도 오픈소스의 역할이 커졌다. 필자가 참여한 클라우드 바리스타(Cloud-Barista) 프로젝트 역시 그 흐름 속에서 태어났다. 미리 쌓은 경험이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의 기반을 지금처럼 다질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이 기술에 전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건 필자만이 아니다. ETRI에는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지만,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처우의 문제도 크지만, 연구 자율성의 제약은 더 심각하다. 공감하지 못하는 주제를 마지못해 연구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도 목소리를 내보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라도 새벽까지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그 과정은 열정이 아니라 버텨냄의 연속이었다. 개인의 열정과 희생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 적어도 연구 조직만큼은 그래선 안 된다.

사실, 연구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어떤 연구에 집중해야 진정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지. 화려한 언변이나 단기 성과를 내세운 번듯한 제안서보다 그들의 전문성과 비전을 신뢰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연구의 중심이자 미래를 여는 돌파구다. 그들이 지쳐 포기하기 전에, 시급히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 필자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 언젠가 그 노력이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로 이어지길 바라며, 연구자의 치열한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