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한국의 ‘근대 건축물’은 대부분 갑오개혁 이후부터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을 지칭한다. 개항 이후 한반도 곳곳에 일본식 화옥(적산가옥), 서양식 양옥 또는 화옥과 양옥, 양옥과 한옥, 화옥과 한옥이 더해진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한국전쟁과 산업화에 따른 도시 재개발을 거치며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일부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남아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에 위치한 대전창작센터(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대전지방보훈청 별관) 또한 그중 하나이다. 1958년 故배한구(1917-2000) 선생이 설계한 것으로 서양의 기능주의 건축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20세기 중반 한국 근대건축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지대한 의미를 갖는다. 1999년 농산물품질관리원 청사가 이전한 후 별다른 쓰임 없이 방치되던 중 2004년 9월 등록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되며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미술계는 젊은 작가들이 제도권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이와 함께 루프, 사루비아 다방과 같은 대안공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미술시장과 제도의 구조는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지형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대전시립미술관 또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응답해, 보다 능동적인 예술적 가치의 생산자로서, 일상과 사람, 장소가 공존하는 ‘경험’과 ‘기억’을 생산하는 실질적이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전창작센터는 이러한 변화와 시대적 요구 속에서 탄생한 공간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축물에 자리 잡은 이곳은 과거 대전 예술가들의 활동 근거지였던 원도심 시내에 위치함으로써, 물리적·정서적 층위를 함께 품은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올해는 대전창작센터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이곳은 내년부터 새로운 이름과 목적 아래 다시 쓰이게 된다. 대전시립미술관과 대전광역시 문화예술과가 공동 기획한 전시 《대종로 470 : 정면, 입면, 배면》은 이러한 전환의 경계에서 만들어졌다. ‘대종로 470’은 이 공간의 행정적 주소인 동시에, 지난 시간 동안 이뤄진 예술적 실험의 물리적 기반을 의미한다. ‘정면, 입면, 배면’은 건축적 양식의 지시어이자,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 중심과 주변, 기억과 망각의 층위를 드러내는 상징적 제안이다. 동시에 전시 형식 자체에 대한 사유를 유도한다. 1920~3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설치미술에서 출발한 전시 디자인의 혁신은 대중매체, 기술의 진보, 장소특수성, 관객 참여 등 다양한 요소를 포괄하며 오늘날의 설치미술로 이어졌다. 구조적 유연성과 관객 중심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선례를 제공하며, 전시 공간을 체험과 인식의 장으로 재편한 역사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다시 호출함으로써, 대전창작센터가 제도권 미술관과는 다른 궤도에서 예술의 다원성과 사회적 접점을 실천적으로 탐색해 온 장이었음을 재조명한다.
대전창작센터는 이제 그 오랜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 단단하고 소박한 회색 건물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여전히 이곳이 무엇인지 모른 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전창작센터는 20년 전 오랜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살았던 것처럼, 그 모든 시간의 파편을 그러모아 새로운 내일의 보고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대종로 470번지에 어떤 명패가 걸릴지라도 모든 실천이 사회에 기여하는 발언이자 경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