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문 ETRI 저탄소집적기술창의연구실 선임연구원

죽음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슬퍼하는 이유는 못다 이룬 꿈, 고인이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던 꿈, 가능성의 사라짐 때문이리라. 나는 내가 언제 삶을 마감할지 확신할 수 있을까. 나의 마지막 날 내가 못다 이룬 꿈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몇 해 전부터 필자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날아와 깊숙이 꽂혀 있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올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삶을 되돌아보면 남중, 남고, 공대, 대학원, 그리고 연구원, 흔하디 흔한 연구원 테크트리 중 하나에 그치지 않지만, 나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장영실과 에디슨의 전기를 읽으며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삶에 자연스럽게 이끌려 공대로 진학했던 것 같다. 재료공학을 선택한 이유는 인류의 역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소재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분야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순전히 더 알고 싶다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서였다.

이후, 8년에 이르는 긴 대학원 생활은 나의 사명을 정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고되지만 돌이켜보면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필자는 대학원 기간 동안 에폭시(유기물)와 실록산(무기물)이라는 두 재료가 분자 수준에서 하이브리드화된 새로운 재료를 합성하고, 이를 투명한 플렉시블 하드코팅 소재로 응용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줄초상이 벌어진다.

예상과 다르게 합성되는 경우, 비록 합성은 성공했으나 의도했던 것과 특성이 다른 경우, 결국 쓰이지 못한다면 소재는 죽음이다. 수년간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필자는 연구를 수행했고, 운 좋게도 이 소재는 전 세계 폴더블 디스플레이 개발 업체들로부터 그 특성을 인정받아 플렉시블 하드코팅 소재로 다양한 공동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다.

2019년 ETRI에 입사한 후에도 필자는 이러한 사명을 기반으로 반도체 패키징용 에폭시 기반 접합 소재 개발에 참여했다. 수많은 소재의 탄생과 죽음의 반복 끝에 우리 실에서 개발한 SITRAB(Simultaneous Transfer and Bonding, 동시 전사·접합) 소재 기술은 2024년 국내기업에 기술이전되면서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현재 필자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소 저감이 가능한 첨단 반도체 패키징용 접합 소재 기술을 새롭게 연구하고자 한다.

지속 가능한 ICT 미래를 실현해 나가는 ETRI의 비전에 발맞춰, 필자는 소재 기술을 연구하고 소재의 사명인 상용화를 통해 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 실현이 가능한 소재 기술을 개발한다.’ 존경하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이다. 제자라면 마땅히 청출어람이어야 옳지 않겠는가. 필자는 ‘내 눈에 흙이 들어오더라도 내가 만든 소재만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사명으로 오늘도 연구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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