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기술자격증의 허점
인건비 절감 위해 대여 관행 지속
서류상 직원으로 등록… 적발 어려워
공사 안전·시민 생명 위협 문제 커
임금 체계·전문성 신뢰 흔들릴 우려

국가기술자격증. 그래픽=김연아 기자.
국가기술자격증. 그래픽=김연아 기자.

[충청투데이 함성곤 기자] 국가기술자격증을 빌려 공사나 사업을 진행하는 이른바 ‘자격증 대여’ 관행은 산업현장 곳곳에 뿌리 박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단속과 처벌이 강화됐지만, 자격 요건을 맞춰야 하는 업체들과 이를 둘러싼 구조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실효성 있는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전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자격자를 정식으로 채용하는 것보다 자격만 빌리는 방식이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며 "특히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인건비 부담 때문에 자격증을 대여받아 서류상 인력을 갖춘 것처럼 꾸미는 사례가 많다"고 털어놨다.

자격 대여가 불법임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배경에는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이 산업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꼽힌다.

현행 국가기술자격법은 자격증을 대여한 경우 자격 취소는 물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이 수사망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다.

자격증 대여가 대부분 지인, 친인척 등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이뤄지거나, 일을 실제로 하지는 않지만 서류상으론 4대 보험 가입 등 직원으로 처리돼 있어 현장에서 적발하거나 신고하지 않는 이상 단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영세업체에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인건비, 세금 등 경제적인 원인도 불법 자격 대여를 유인하는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으로선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나 인허가를 위해 자격자가 필요하지만, 해당 인력을 정식으로 채용하면 인건비·보험료·세금 부담이 크다.

반면 자격증 보유자는 실제로 근무하지 않고도 일정 수입을 얻을 수 있어 양측 모두에 이득이 되는 ‘윈윈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타 업종에 종사하거나, 이미 은퇴했거나, 단순히 자격만 취득한 후 취업하지 않은 인력 등을 중심으로 암묵적인 대여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단지 제도 위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격을 갖춘 사람이 현장에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공사 안전이나 설계 품질에 치명적 결함이 발생할 수 있고, 특히 건축, 전기, 환경, 안전 등 분야에서는 이 같은 결함이 곧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 질서 붕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자격을 취득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는 근로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업계 임금 체계와 전문성에 대한 신뢰도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위가 생존을 위한 방식이 됐다며 자격 대여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찾고, 이를 위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하도급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업계 특성상 내려오는 비용은 적은데, 인건비나 자재비는 오르니 비용 절감을 하지 않으면 당장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기업도 많다"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크고 작은 불법 행위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성곤 기자 sgh08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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