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배 금산군 정책기획보좌관
올해도 어김없이 무더위와 함께 여름휴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는 항상 이번 휴가에 어디서 피로에 지친 일상을 날려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노동과 경제, 이성 등을 문명의 핵심 개념으로 보던 시대에, 1938년에 발표한 「호모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에서 놀이야말로 문명의 토대라 말하였다.
인간활동의 놀이요소는 스포츠의 경쟁 행위와 정치의 권력 게임, 법정에서 변론과 판결, 문화예술은 연극·문학·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인류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 백일과 첫돌의 돌잡이, 성년식과 결혼식을 거쳐, 아이를 낳고 기르며, 회갑연 잔치와 장례에 상여행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속에 놀이적 요소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모루덴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스포츠 활동을 하고, 시를 쓰고 낭독하며, 노래를 하며 춤을 추는 삶일까? 어쩌면 이보다는 더 상위 개념으로, 남이 정해주는 행복이나 즐거움이 아닌, 내가 정하고 내가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놀이하는 사람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속 놀이문화의 예로, 과거 선비들의 산수유람과 풍류의 삶을 들 수 있다. 옛 선비들에 입신양명은 과거시험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그 준비 과정은 자연 경관이 빼어난 명산을 유람하며, 풍류와 시조 경창의 놀이로 자신을 수련하였다. 금산의 12폭포 역시 그러한 장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향토사학자 김현봉의 「비단고을의 만폭동, 십이폭포이야기」 에서 그러한 광경을 찾을 수 있다. 금산의 12폭포는 풍광이 탁월하면서, 과거를 거쳐 이름을 남긴 유학자들이 새긴 글씨가 남아있어 그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12폭포는 그 경관이 수려하면서 장엄하고, 바위 곳곳에 선비들의 많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물론 금강산 내금강의 만폭동과 금산의 12폭포를 직접 비교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바위산을 따라 물이 흐르고, 계곡의 길이도 비슷하다. 또한 가뭄일 때는 12개의 폭포가 보이지만, 우기에는 바위벽 전체가 물줄기로 덮여 마치 모든 벽이 폭포가 된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만폭동(萬瀑洞)이라는 말 그대로 만개의 폭포가 되듯, 금산의 12폭포도 우기에는 백폭동(百瀑洞) 수준으로 사방이 폭포로 변하여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특히, 선인들의 글씨는 여러 곳에 암각문(岩刻文)으로 새겨져 있다. 12폭포와 가까운 산천재 서원은 윤선거 등에 의해 세워져 윤증이 계승했다. 또한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 많은 유학자들에게는 학문의 장이 되었다. 이에 12폭포는 그들에게 풍류의 장이 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새긴 암각문을 마주하면, 당대 석학들의 다채로운 서체와 그 속에 담긴 그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바쁜 일상속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청량제 같은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폭염으로 힘든 여름철, 12폭포에서 과거 선비들이 선경(仙境)을 배경으로 시제를 띄우고, 시조를 주고받으며 풍류를 즐기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 물소리와 신선한 바람 속에서 나 또한 잠시 선비가 되어 풍류문화를 즐기고, 삶의 여유를 찾아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