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희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명절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1승이라는 영화를 봤다. 인생에서 한 번의 성공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배구 감독 김우진(송강호 분)의 이야기였다.
여자배구팀을 시즌 중 딱 1승만 시키면 된다는 임무로 새로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감독은 선수들 간의 갈등과 고정관념, 기존 포지션을 깨기 시작한다. 반대하는 선수들에게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포지션을 설득하고,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며 결국 1승을 거둔다.
평생을 바쳐온 선수들의 포지션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재능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웃으며 봤지만, ‘만약 내가 감독이었다면 같은 조의 선수들로 1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라는 여운을 남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문화예술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었다. AI로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직업에 대한 조사에서 예술가는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고, 모방과 창작 사이 애매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급속히 발달한 AI는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시,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은 물론, 음악, 영상 등에서도 AI를 통한 창작활동이 진행된다.
2022년 콜로라도 박람회 미술경연대회 1위 작품은 AI가 그린 작품이었고, 창작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국의 청문회에 출석해 "나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알고리즘으로 예술을 창작한다"고 답하며 유명인사가 되었던 인간형 예술가 로봇 ‘에이다’의 작품은 132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2024년 독일의 지역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진포니 커에서 3개의 로봇 팔을 가진 마이라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스웨덴에서는 로봇팔이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기도 했다.
AI의 예술은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젖어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의 문제부터 예술가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 등이 제기되었으며 일부예술계에서는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과학과 예술 사이의 논란이 가장 먼저 불거진 예술이 사진일 것이다. 컬러 사진이 처음 나왔을 당시 작가들은 컬러사진을 작품사진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디지털카메라도 마찬가지였다. 필름카메라가 아닌 디지털은 합성과 조작 등 사진의 진실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지털기술에 대한 교육과 복제와 공유 등 디지털 사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저작권 교육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AI보다는 순수예술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급속도로 발전하는 AI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진계가 그러했듯이 음악이나 문학, 기타 시각예술 등도 AI의 예술세계에 대한 부분을 검토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어쩌면 머지않은 시기에 AI예술지원사업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예술가의 작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과 AI와의 협업을 통해 예술범위 확장 등 AI와 함께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단점과 장점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야. 단점이 없어지면 장점도 없어지는 거야"라는 김우진의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른다. AI를 활용한 예술도 마찬가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