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 충남대학교 여성젠더연구소장

최근 동덕여대 시위 학생들은 단순 폭도로 매도당하고, 54억원이라는 거금의 학교 기물 파손 보상 요구로 협박당했으며, 남녀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그들의 주장은 멋대로 왜곡돼 반페미니즘 ‘신남성연대’의 혐오 표적이 됐다.

이런 매도, 협박, 왜곡은 사실상 동덕여대의 시위가 주장하려는 핵심 쟁점에서 벗어나 한국 일부 족벌사학이 지닌 문제 본질을 은폐하고 희석하려는 정치적 술수이며, 남녀공학 전환 논의는 우리사회 성평등 진전에 대한 체감과 판단에 따라 다양한 논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젠더 갈등으로 호도하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비겁한 페미니즘 백래쉬다.

먼저 이번 시위는 학교 측에 대한 학생들의 오랜 불신에서 비롯된다. 11월 5일 동덕여대 교무회의 직후부터 동덕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고, 이런 중요한 논의가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발끈했고 11월 11일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을 정식 안건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변명했지만 학생들은 믿지 않았다. 학생들의 의사가 묵살된 사례가 이미 허다했기 때문이다. 숱한 위험 민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동덕여대 캠퍼스에서 재학생이 쓰레기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 학과생들의 의사 반영 없이 학과를 통폐합하는 행위 등 학교의 어떤 변명도 학생들이 신뢰할 수 없는 조건이 이미 조성됐던 것이다.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은 동덕여대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족벌사학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20억원 교비 부당 사용으로 해임됐던 조원영 총장이 2015년 동덕여대 개방 이사로 슬쩍 복귀했고, 그해 8월에는 이사장에 선임됐는데, 교육부는 군말 없이 즉각 승인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상당수가 사학과 연루돼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들은 사학의 비리에 관대하다. 그러니까 비리를 저질러 해임된 자를 하루 만에 승인해주는 교육부다. ‘비문명’과 ‘폭도’를 운운하면서 우아한 평화주의자인 척하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잘 살펴보시라.

영국 20세기 초반 여성들이 선거권을 요구할 때 제때 줬다면 여성들이 폭력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제아무리 소통하려고 해도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최후로 선택하는 방법이 ‘부수기’ 아니던가.

‘부수기’ 자체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 약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종종 ‘부수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부당할 뿐이다. 족벌사학은 정치권의 비호를 받는 강자다. 이런 강자에 맞서는 학생들은 약자다. 약자의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다.

교육기관은 무엇보다 교육적 비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교육에서 성평등의 진전을 신중하게 평가하고, 그 관점에 따른 소신 있는 선택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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