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연구기관이 밀집한 대전 대덕특구가 뒤숭숭하다.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공언하자, 출연연 내부는 물론 과학기술계 전반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예산 삭감 배경은 연구비 나눠먹기, 브로커 개입, 불투명한 예산 집행 등 부실하고 방만한 연구비 집행 탓인데, 그렇다고 일괄적으로 출연연 전체 예산을 줄이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최근 NST 산하 25개 출연연에 내년 R&D 사업비 삭감 규모를 통보했는데, 기존 예산 대비 20~30% 삭감안 제출을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23%,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의 경우 28%가량 삭감된 것으로 전해진다. 누리호 등 우주발사체 개발을 총괄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23% 삭감안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카이스트 등 4대 과학기술원도 10~15% 삭감안을, 국내 기초과학 연구 요체인 기초과학연구원도 15% 삭감안을 전달받은 상태다.
국민 혈세를 마음대로 유용하는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정부의 일명 ‘카르텔 혁파’는 누구나 공감한다. 다만 일부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부적절하게 쓴 것을 두고 전체 예산까지 줄이면서 출연연 모든 연구자들이 책임을 지라는 식의 정책 집행은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되지 않는다. 기초과학을 비롯해 제대로 몰두할 수 있는 연구현장을 만들고, 글로벌한 연구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적절한 지원이 미래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R&D 혁신이 될 수 있다.
4대 과기원을 비롯한 적지 않은 과학 인재들이 중도탈락 후 의과대학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국내 연구현장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연구비 부정 사용을 막으려면 지금보다 더 꼼꼼한 감시 체계 만들고 보다 엄중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가면 된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보다 치열해진 기술패권 경쟁시대에 걸맞은 연구현장의 혁신이다. R&D 사업이 그 목적과 성과 창출 중심으로 운영되는지 재점검하는 동시에 미래 국가경쟁력을 견인할 수 있는 연구개발 전략을 수립을 위해 현장 목소리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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