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혼돈 속에서도 가을은 다가온다.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려 시 한 편을 찾는다. 굳이 시집을 찾아 펼칠 필요도 없다.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승하차시 스크린 도어에 적힌 시 한 편이 기다린다. 무료한 김에 끝까지 읽기도 하는데 이런 본의 아닌 시 독서를 통하여 얻는 느낌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스크린 도어 벽면에 새겨 넣으려면 10여 행 분량이 적합하고 내용 역시 평이하고 감성에 호소하는 서정 위주의 소품으로 치우친다. 지하철공사와 문인 단체가 정기적으로 작품을 선정하여 교체하는 이 지하철 시는 기성문인, 시민공모 작품 그리고 더
#. 예전 어른들이 친구를 잘 가려 사귀라는 훈계를 많이 하셨는데 사실 이런저런 문제나 사건사고에는 잘못 사귄 친구, 잘못 발 들여놓은 동아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자연히 몸이 검게 된다는 경고의 함의를 되새긴다. 열정과 의욕으로 국회에 들어간 초선 의원들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선배 의원들을 답습하는 것은 환경의 영향이 지대함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거부도 하고 저항도 했겠지만 그 의지와 판단은 이내 거대한 물결에 휩싸이고 결국 물들게 된다. 21대 국회 개원 석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일
최근 초선 여성의원이 종전에 보기 드물었던 색채와 디자인의 복장으로 등원해서 관심이 비등했었다. 그동안 오래 누려왔던 국회의원들의 특권과 권위 내려놓기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마당에 참신하고 발랄한 패션이라는 긍정적 시각이 있었다. 남녀의원을 막론하고 감색이나 검은색 우중충한 컬러의 정장 이미지를 새롭게 희석시켰다는 해석이다. 반면 T.P.O 즉 '시간, 장소, 상황'이라는 전제에 걸맞는 개념의 복장은 국민의 대표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막중한 국사를 논의하는 장소에 가벼운 외출 스타일 의복은 적절치
약국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며 마스크를 구하던 때가 불과 몇달 전이다. 이즈음 마트나 편의점, 약국에 즐비하게 쌓인 마스크를 보며 시장경제, 자유로운 유통의 힘을 확인한다. 우리나라는 확진자 수가 아직 한자리~두자리 숫자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수백, 수천명을 헤아리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참담한 현실과 비교하며 우리 방역체계의 튼실함에 감사한다.벌써 일곱달.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코로나 확산과의 투쟁에서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마스크 착용이 아닐까. 평소 거의 찾지 않던 품목이 전국민 생활필수품이 되는 동안 마스
정신신경과가 정신건강의학과, 방사선과가 영상의학과, 소아과가 소아청소년과로 진료과목 명칭을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여러 분야 이름이 제대로 합당하게 불리우는지를 사회발전 척도의 하나로 볼 수 있다면 일련의 조치는 긍정적이다. 최근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일부 국회의원들이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변경하는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진료과목 명칭변경이 국회 입법사항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보이고 있는 여러 행태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이런 사소해 보이지만 의미있는 법 개정 활동에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정현종 '경청(傾聽)'부분#. 지도학생과 마주 앉아 면담을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듣는다. 가끔 추임새를 넣어주면 된다. 반복 추임새와 질문 추임새, 말 끝부분을 한번 되풀이 하거
"서울현충원에 안장하면 '우대'하는 것이고,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면 '홀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 '서울 우대 대전 홀대'라니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호국영령들을 홀대하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네." 페이스북 친구 어느 분의 노기에 찬 포스팅에 공감하였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이 이미 포화상태여서 화장 후 유해를 안치하는 경우 이외의 매장은 어려운 실정이라 1985년 조성된 대전 현충원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시설에서 애국영령들을 모시고 있는데 얼마 전 불거진 장지를 둘러싼 논란은 참으로 뜬금없다. 서울 대전 외에도 임
#. 아는 분이 고슴도치를 구입했다고 자랑하였다. 애완동물의 범위가 오래 전부터 돼지, 악어, 곤충 등 종전에 생각지도 못하던 범주로 크게 넓어지면서 고슴도치도 수요가 많아 전문 매장이 성업중이라 한다. 개나 고양이 같이 살가운 감정교류는 어렵겠지만 기르기 쉽고 특히 귀엽다고 자랑이다. 고슴도치 하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라는 말이 이내 떠오른다.#. '함함하다'는 부드럽고 윤기나는 상태를 이르는 우리말인데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형용사가 생소할지도 모른다. 짧은 표현 속에 깊은 뜻, 곱씹을수록 은근한 매력이 우러나오
벨기에 필립 국왕은 과거 콩고 식민 지배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모든 인종차별주의에 맞서는 투쟁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국가 공용어인 만큼 프랑스어 버전을 보니 이 대목을 "plus profonds regrets"로 표현하였다. regrets라는 어휘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특히 외교상 두루뭉실하게 입장을 표명할 때 흔히 쓰인다. 사전적 의미로 regrets는 1)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고통스러운 의식의 상태 2) 과거에 행하였거니 행하지 않은데 대한 불만과 슬픔 3) 속박
6.25 전쟁 참전국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낸 일은 훌륭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나라의 생존 참전용사들께 우리의 기억과 감사를 마스크에 담아 보냈으면 좋겠다. 대부분 90이 넘은 고령인데 70년 전 젊은 시절, 낯선 신생독립국 전투에 투입되거나 지원업무를 담당했던 추억이 가물가물하실 것이다. 그 피폐했던 나라에서 보내온 진심이 묻어나는 간곡한 감사편지와 마스크 꾸러미는 우리나라의 위상과 품격을 과시하는 절묘한 선물이었을 것이다.지금처럼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는 국제 판도 속에서 70년 전 보은을 구체적으로 행하기란 그리 쉬운
벨기에는 작은 나라다. 룩셈부르크, 모나코, 바티칸, 리히텐슈타인 같이 국토면적이 더 작은 국가들도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역량과 국력을 과시하는 나라 가운데 벨기에의 비중은 단연 돋보인다. 면적 3만여 평방 킬로미터로 세계 139위, 인구 1150만 명 남짓 (세계 82위), 복잡한 언어현실 같은 외형적 현실만 본다면 설명이 어렵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주요기구, 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 그리고 1,000여개 국제기구가 자리 잡은 명실상부한 유럽의 교차로다. 북부는 플라망어(네덜란드어), 동남부에서는 왈룬어(프랑스어)라는 이질적인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전 100주년, 6.25전쟁 7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올해는 이런 역사적 기념일 외에 문학적으로도 의미있는 기록이 적지않다. 특히 1920년 창간된 '개벽'은 천도교에서 펴낸 종합지인데 민족문학, 민족문화 창달을 목적으로 종교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지면의 1/3을 문학과 예술에 할애한 현대적 잡지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6년만에 폐간하기까지 '개벽'은 문학이론과 해외문학소개, 문인들의 작품 수록과 신인발굴 등 선구적인 개성을 과시했다. 100년 전에 이런 개념의 잡지를 보유한 우리 문화의 전통과 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