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치야
사진=도치야

#. 아는 분이 고슴도치를 구입했다고 자랑하였다. 애완동물의 범위가 오래 전부터 돼지, 악어, 곤충 등 종전에 생각지도 못하던 범주로 크게 넓어지면서 고슴도치도 수요가 많아 전문 매장이 성업중이라 한다. 개나 고양이 같이 살가운 감정교류는 어렵겠지만 기르기 쉽고 특히 귀엽다고 자랑이다. 고슴도치 하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라는 말이 이내 떠오른다.

#. '함함하다'는 부드럽고 윤기나는 상태를 이르는 우리말인데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형용사가 생소할지도 모른다. 짧은 표현 속에 깊은 뜻, 곱씹을수록 은근한 매력이 우러나오는 토박이 말이 점차 소멸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잘못 쓰이는 우리말이 아무런 검증이나 수정 없이 통용되는 마당에 머지않아 잘못된 어법이 그대로 굳어져 표준어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어의없다, 쇠뇌당하다, 호위호식, 2틀, 딸래미, 최류탄, 환골탈퇴, 일치얼짱... 같이 조금씩 또는 상당부분 그릇된 표현들이 무차별 사용되면서 어이없다, 세뇌당하다, 호의호식, 이틀, 딸내미, 최루탄, 환골탈태, 일취월장을 밀쳐내고 있다. 발음이 쉬운대로 쓰인다지만 그 정도가 심각하다. 그동안 수없이 전개되었던 우리말 순화 운동과 사회적 경각심이 나날이 드세지는 언어 오용, 훼손 앞에 힘을 잃어가는 이즈음 무엇보다도 국립국어원의 위상과 기능을 대폭 확대하고 강력한 국어순화정책을 폈으면 한다.

프랑스어 보호, 육성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1635년 창설되어 400년 가까이 프랑스어를 다듬고 표준화하고 있다. 40명 회원들은 입회 시 칼을 받는다. 모국어를 지키고 아름답게 순화시키라는 임무를 부여하며 수여하는 칼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겨본다. 국립국어원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견줄만한 임무와 권한을 줄 만하다. 상징적 기관인 원로들의 학술원, 예술원 역할도 이제는 실용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국립국어원 강화, 국어교육 확대, 오염되는 우리말을 지키고 다듬기 위한 현실적이고 강력한 시책이 시급함에도 우리 사회는 소모적인 퇴행성 정치 현안에 휩쓸려 우리말, 우리글의 변질과 훼손, 무분별한 외래어와 국적불명 언어 남용 같은 위태로운 현실에는 눈을 돌릴 겨를이 없어 보인다.

'함함하다'같은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이 널리 쓰이려면 우선 일상 속에 배어든 거친 단어와 무의미한 표현, 과장되고 뒤틀린 표현들을 걸러내는 자각과 과감한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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