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청', 이 두 글자를 21대 국회에 전해 드린다. 사진=연합뉴스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정현종 '경청(傾聽)'부분

#. 지도학생과 마주 앉아 면담을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듣는다. 가끔 추임새를 넣어주면 된다. 반복 추임새와 질문 추임새, 말 끝부분을 한번 되풀이 하거나 적절한 질문을 가끔 던지는 반응이다. 이윽고 이야기를 마치면 학생은 스스로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상담하러 왔다가 한바탕 이야기를 털어 놓으니 후련한지 씩 웃는다. 덩달아 웃어준다. 이쯤 되면 무슨 지도교수 말씀 한마디, 조언, 참고할만한 선생의 이야기가 별로 필요 없어진다. 이야기를 펼친 학생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는지, 어떤 힌트를 얻었는지 또는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는지 감사하다며, 다음에 또 오겠노라며 인사하고 연구실을 떠난다. 담당교수는 요지를 면담기록 사이트에 입력하고 몇 마디 코멘트를 덧붙이면 상담은 끝난다. 즐거운 경청이었다.

#.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내심이 관건인데 사실 이 대목이 그리 여의치 않다.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고 이야기 하면서 상대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는가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중에 말을 끊거나 가로채는 몰상식이 아직 건재하고 있다. 술자리 방담으로부터 대선주자 TV 토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대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제대로 경청하려면 듣는 동안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상대방 이야기 틈새에 짧게 또는 조금 길게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다. 고개를 움직인다는 것은 상대방 이야기에 동조, 공감한다는 의미라기보다 '목소리가 들린다, 듣고 있으니 계속말하라'는 신호인 것이다. 상대 얘기가 물리적으로 내게 도달하여 듣고 있다는 반응전달 신호에 인색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경청', 이 두 글자를 개원 두 달이 되도록 여전히 상대방에 귀를 막고 있는 21대 국회 그리고 우리 정치권에 가장 시급하게 권해 드린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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