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식민지 콩고민주공화국 독립 60주년에 즈음하여 담화를 발표하는 필립 벨기에 국왕. 연합뉴스

벨기에 필립 국왕은 과거 콩고 식민 지배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모든 인종차별주의에 맞서는 투쟁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국가 공용어인 만큼 프랑스어 버전을 보니 이 대목을 "plus profonds regrets"로 표현하였다. regrets라는 어휘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특히 외교상 두루뭉실하게 입장을 표명할 때 흔히 쓰인다. 사전적 의미로 regrets는 1)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고통스러운 의식의 상태 2) 과거에 행하였거니 행하지 않은데 대한 불만과 슬픔 3) 속박적인 현실에 대한 언짢음 등이 대표적 용법이다. 받아들이는 측에서는 이 표현을 사과, 나아가 사죄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발설하는 입장으로서는 그저 유감표명 차원으로 할 바를 다했다는 일종의 면피성 수사로 가름하려고 하는 듯하다. 이 담화가 나온 6월 30일은 벨기에 옛 식민지였던 콩고민주공화국 독립 60주년 기념일이었고 근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거세지고 있는 인종차별 저항 움직임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번지고 있는 싯점이라 주목된다. 벨기에에서는 오랜 기간 콩고에 무자비한 탄압과 살륙을 자행한 레오폴 전 국왕 동상을 훼손하는 사태가 잇따르자 최초로 국왕의 식민지배 유감표명이 나온 듯하다.

regrets 라는 단어 하나로 유감, 사과, 사죄 같이 의미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 각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우리로서는 1990년 아키히토 전 일본 국왕의 "통석의 념"이라는 발언이 잊혀지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몹시 애석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되는데 가해자의 입장에서 애석하다 라는 의미는 경우에 따라 여러 갈래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총리가 재임시 거듭 용서를 청하며 피해국에 무릎을 꿇던 사진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온당치 못했던 행적과 죄악에 대해 진정성을 담아 가급적 강력한 사과의 표현으로 앙금을 풀어가는 진취적인 21세기 국가 지도자가 필요하다. 35년 강점기의 죄과를 외면한 채 여전히 적반하장 견강부회 횡설수설을 일삼는 이웃나라를 둔 우리의 현실이 딱하다. 올해는 아프리카 17개국이 독립 60주년을 맞는다, 과거 식민지배 국가였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의 국가원수 가운데 누가 가장 진정어린 자세로 옛 악행을 사과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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