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오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캄캄한 암흑을 통과하면 밝은 곳으로 나오기 마련인데 아쉽게도 아직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봄꽃 소식이 하루가 다르게 무르익어 가는데 우리 마음은 여전히 을씨년스러운 지난 1월, 2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뛰어난 시민의식으로 전염병 퇴치의 모범으로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성숙함에 힘입어 이제 터널은 끝날 것이다. 어느새 짙어진 봄기운을 만끽하며 다시 찾은 일상의 소중함, 몇 달이 몇 년 같았던 2020년 벽두의 기억을 교훈으로 간직하면서. 그리고 코로나19에 맞서면서 우리 사회
1990년대에 다가오는 새 밀레니엄을 내다본 예측서적이 숱하게 출간되었다. 그 중에는 오랜 탐구와 성찰로 내공을 쌓은 전문가들의 무게 있는 저서도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활용과 영역 확장이 제한적이었던 빅 데이터를 활용한 사례분석은 흥미로웠다.새 밀레니엄도 어느 새 20년이 지났다.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던 21세기 예측서적에서 내다본 전망이 어느 정도 현실화되었을까. 프랑스의 저명한 인문, 사회과학자이며 현실정치에도 깊숙이 참여했던 자크 아탈리(1943∼)는 1998년 펴낸 '21세기 사전'에서 21세기에 인류가 당면할 개념을 40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고 되도록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금 우리 사회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거대한 어항과 같다. 그 와중에 헌신적인 의료진과 방역, 행정 당국의 노력이 보석처럼 빛난다. 의도하지 않게 감당해야 할 공백 기간, 피할 수 없다면 분주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비껴나 나 자신을 돌이켜 볼 기회로 삼을 만하다.두꺼운 책을 한 권 빼든다. 몽테뉴 '수상록', 제목이 주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책 그 어느 장(章)에서부터 읽기 시작해도 괜찮다. 1580년부터 펴내기
"20대 국회 임기 4년 동안 신선하고 즐거운 소식이 많이 들려왔으면 합니다. 밤을 새우며 상정할 법안을 연구하는 의원회관 불빛, 캐주얼 차림으로 자전거나 낡은 자동차로 등원하는 의원들의 소신 있는 모습으로 팍팍하고 지친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희망과 위로의 신선한 충격을 기대합니다."20대 총선 후 2016년 4월 15일자 이 컬럼 졸고의 끝 대목이다. 당시에는 그만큼 20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컸고 실제 그런 조짐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혹시가 역시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중, 후반 들어 식물
TV가 크게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라디오의 쇠퇴를 내다봤다. 그러나 라디오는 특성화되면서 TV시청이 어려운 환경을 파고 들어간다. 컴퓨터 자판입력으로 펜을 사용할 일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더욱 다양하고 고급화되면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전자책이 21세기 들어 기존 종이책 시장의 약 30%를 잠식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출판 빙하기가 끝간 데 없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종이책은 쏟아져 나오고 e-book의 점유율 역시 기대치를 훨씬 밑돈다.오랜 세월 일상의 한 부분으로 굳어진 생활요소들은
언제 진정국면에 접어들지 알 수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 사태는 우리 사회를 급격히 위축·냉각시켰다. 가족과 친지, 허물없던 이웃, 별 생각없이 접촉하던 불특정 다수가 염려와 불안,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기약없는 긴장의 일상이 이어진다.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가정과 사무실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겨를이 없었던 성찰의 시간, 나를 찾는 탐색의 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홀했던 책읽기를 가까이 할 기회로 활용할만 하다. 근래 SNS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이번 사태와 공교롭게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는 표현에서 처럼 쥐는 대체로 작고 볼품 없으며 상대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대상을 지칭한다. 쥐꼬리만한 월급,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같은 문구 역시 왜소함을 과장하는 용도로 쓰인다. 십이지 동물 중 첫째인 쥐는 다산, 부귀, 낙천, 사교성 그리고 근면과 검소를 상징하기도 한다지만 식량을 축내고 장비나 시설, 무기를 훼손시키는가 하면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체로 각인되기도 하여 이래저래 명쾌하게 정체를 규정하기 어려운 동물의 하나로 꼽힌다.동물의 개성과 이미지를 부각시켜 인간에게 교훈을 깨우치
1990년대 중반 우리사회에서는 한창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이런저런 실천운동이 확산되던 즈음이었다. 당시 이미 선진국 대열에 포함된 싱가포르는 어떨까하고 유심히 관찰했는데 당시만해도 아무런 조치나 매뉴얼 없이 쓰레기를 그냥 섞어서 버리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면적에 많은 인구가 밀집하다보니 환경오염에 남다른 의식을 가질 법도 하련만 그때까지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하기야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50개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지금도 분리배출이나 재활용 개념이 대체로 희박하여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폐
석 달 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계에서는 이합집산, 합종연횡, 상호비난과 암투 같은 전근대적인 행태가 재연되고 있다. 20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특히 후반기 이른바 동물국회의 참담한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그럴수록 다른 나라 정치권 특히 북유럽 의회 구성원들의 참신한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자전거로 등원하고 이런저런 기득권, 특히 권위에서 자유로운 그들의 가시적인 활동 역시 멋지고 미래지향적이다.21대 총선을 계기로 높고낮은 자리이동 역시 활발해질 것이다. 공천을 주는 대신 어떤 자리를 보장하고 낙선자에 대한
동지가 지났지만 아직 춘분까지는 두 달 반 남짓, 겨울이 지루하게 계속된다. 1월 1일 새해 첫날은 이제 하루 쉬는 정도의 의례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았고 음력설을 쇠어야 본격적으로 2020년이 시작된다는 실물감은 굳건하다. 세밑에 특히 SNS를 통해 다양한 디자인과 문구로 성탄, 새해인사 연하장을 주고받았지만 디지털 콘텐츠가 편리한 만큼 상실되는 아날로그 중량감이 그립다. 예전 우송된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뜯어 적힌 사연을 읽고 그 카드를 거실 장식장이나 사무실 책상위에 한동안 놓아두던 풍습이 사라진 자리의 허전함은 크다.아직 오래
#. (…)이 언덕 저 언덕으로 헛되이 눈길을 옮겨가며/ 남에서 북으로,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이 너른 벌판 곳곳을 살펴보고는/ 나는 중얼거린다 "그 어디에도 행복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구나!" (…) / 숲속 나뭇잎이 들판에 떨어지면/ 저녁 바람이 일어 골짜기로 잎새를 휩쓸어 간다/ 그리고 나는, 그 시든 잎사귀와 같으니/ 사나운 폭풍이여 나뭇잎처럼 나도 데려가 다오! - 라마르틴, '고독' 부분지금 읽으면 대단히 표피적인 감상일변도의 서정 토로로 느껴지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전혀 새로운 감수성과 충격적인 표현으로 전
밥상을 앞에 놓고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오랜 세월 우리 사회 가정교육이었다. 대화와 소통을 최고의 테이블 매너로 꼽는 글로벌 에티켓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대목이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나없이 곤궁하던 시절, 차려놓은 음식이 변변치 않은데 철없는 아이들의 음식투정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그러했을 것이고 식사 후 곧바로 일하러 나가려면 밥먹는 시간을 가급적 단축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에 식사를 끝낸 까닭에 맛이며 미각은커녕 음식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