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테뉴 동상(1533-1592). 사진=이규식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고 되도록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금 우리 사회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거대한 어항과 같다. 그 와중에 헌신적인 의료진과 방역, 행정 당국의 노력이 보석처럼 빛난다. 의도하지 않게 감당해야 할 공백 기간, 피할 수 없다면 분주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비껴나 나 자신을 돌이켜 볼 기회로 삼을 만하다.

두꺼운 책을 한 권 빼든다. 몽테뉴 '수상록', 제목이 주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책 그 어느 장(章)에서부터 읽기 시작해도 괜찮다. 1580년부터 펴내기 시작했지만 440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를 느끼기 어려우리만치 담백하고 보편적인 서술로 '나'에서 출발하여 인간본성에 이르는 자유로운 사색의 탐사를 펼친다. 그 중 인상적인 문단을 옮긴다.

(.....) 죽음이 우리를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도처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로 하자. 미리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자유를 예상하는 것과 같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에서 풀려나는 법을 익힌 셈이다. 죽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모든 굴종과 억압에서 해방된다.(.....)

여기서 죽음을 고통이나 그 밖의 우리 삶과 행복을 위해하는 요소들로 대치해도 좋을 듯하다. 삶의 고비 고비 우리를 괴롭히는 죽음의 위협, 고통, 난관 같은 개념에 대하여 몽테뉴는 나름의 소신을 펼친다. 다음 대목은 얼핏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여러 번 읽어보면서 각자 나름의 상황과 경우를 대입하며 몽테뉴의 의도를 짚어볼만 하다.

(.....) 용맹함은 다른 미덕들과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가면 악덕의 대열에 끼게 되고 결국 거기에 묻혀 경계를 잘 알 수 없는 경솔함, 고집, 광기에 이르게 된다. 사실 그 경계는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고찰로부터 우리가 갖고 있는 관습이 생겨난 것인데, 전쟁 중에 버틸 수 없는 요새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을 군사 규칙을 따라서 처벌하고, 심지어 사형까지 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희망만 믿고 닭장만한 요새들이 군대를 멈춰 세우게 될 것이다! (.....)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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