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문화카페] 디지털 시대의 현수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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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문화카페] 디지털 시대의 현수막 풍경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2월 13일 17시 45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2월 14일 금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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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다롄시 중심가에 걸린 현수막

TV가 크게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라디오의 쇠퇴를 내다봤다. 그러나 라디오는 특성화되면서 TV시청이 어려운 환경을 파고 들어간다. 컴퓨터 자판입력으로 펜을 사용할 일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더욱 다양하고 고급화되면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전자책이 21세기 들어 기존 종이책 시장의 약 30%를 잠식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출판 빙하기가 끝간 데 없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종이책은 쏟아져 나오고 e-book의 점유율 역시 기대치를 훨씬 밑돈다.

오랜 세월 일상의 한 부분으로 굳어진 생활요소들은 대체가 어려운가 보다.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고 개인용 SNS기기 보급으로 용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던 플래카드, 현수막 역시 변함없이 성황을 누리고 있다. 독재정권의 국민의식 개조용으로부터 자질구레한 생활정보를 알리는 용도까지 굳건히 나부낀다. 인터넷 보급과 사회관계망 확산에 따라 소멸이나 쇠퇴를 예상했는데 훨씬 다양한 쓰임새로 대중의 시선을 붙들려 한다. 시골마을 아무개 손자·손녀 아무개가 어느 대학이나 시험에 (수석)합격했다는 알림으로 부터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운 상업광고, 정치인들의 명절 인사와 치적 과시, 선거운동용은 물론이고 각종 세금납부와 신고를 알리는 행정안내는 현수막의 단골소재이다. 첨예화한 디지털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날로그를 찾는 감성에 부응한 탓인지는 몰라도 현수막 펄럭이는 거리 곳곳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중국은 우리보다 현수막의 쓰임새와 보급 물량이 훨씬 넓고 크다. 아마도 현수막 활용과 계몽의존 측면에서는 세계 으뜸이 아닐까 싶다. 중국공산당의 기본 정책정강을 홍보하는 굵직굵직한 알림으로부터 해외여행 시 지켜야 할 수칙 수십 가지를 미주알고주알 빽빽하게 적어 대륙 곳곳에 내걸어 놓았다. 이즈음에는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의무 준칙 현수막이 중국전역을 뒤덮고 있지 않을까.

행인들의 눈길을 끌려면 크기는 확대되고 자극적인 디자인이어야 하는 까닭에 우리나라 현수막은 아직 그다지 높은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 듯하다. 무조건 큰 사이즈, 최대한 자극적인 원색과 문구를 선호하는 탓에 거리는 나날이 초라하고 전근대적인 장식물로 뒤덮인다. 이제 4·15총선을 앞두고 또 얼마나 괴로운 현수막을 쳐다봐야할지 걱정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