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멈춰버린 태안의 기적, 잠자는 3000억원
① 사고 후 15년, 유류피해기금 3067억원 아직도 잠들어 있다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서해안연합회, 기금 배분사업 계약 체결
두 단체 활용방법 고민보다 누가 수천억원 운영 주도할지만 집중
감독기관 해수부·모금회, 개입 않고 소극적 태도 보인 것도 문제

2007년 서해안 유류 사고 당시,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항구에서 기름에 오염된 채 폐사된 상쾡이 한 마리를 주민들이 육지로 옮기고 있다. 충청투데이 DB
2007년 서해안 유류 사고 당시,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항구에서 기름에 오염된 채 폐사된 상쾡이 한 마리를 주민들이 육지로 옮기고 있다. 충청투데이 DB

[충청투데이 김중곤 기자] 2007년 12월 충남 서해안에 1만 2475㎘의 기름이 유출된 지 15년이 흘렀다. 국민 123만명이 자발적으로 전개한 ‘기름 닦이 운동’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기적을 낳았지만, 피해 지역의 현실은 온전한 회복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고를 냈던 삼성이 피해지역 복원과 발전을 위해 3067억원의 출연 기금을 냈지만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면서 주민 간 갈등을 초래하고, 충남 서해안에 또 한 번 얼룩을 씌우고 있다. 기금은 사용 기한이 정해져 있어 이후에는 피해민의 손을 떠나는데, 반환점을 도는 현 시점에 10% 남짓밖에 쓰지 못한 실정이다. 충청투데이는 기획 시리즈를 통해 태안 기름 유출 사고 관련 기금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기금 정상화의 길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예인선단의 해상크레인이 바다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했다. 그 충격으로 유조선에 있던 원유 1만 2475㎘가 서해 바다로 쏟아졌다. 이는 1997년 이후 10년간 국내 해양 사고 3915건으로 유출된 기름(1만 234㎘)보다 많은 양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고로 충남 6개 시·군의 △해안선 70.1㎞ △해수욕장 15개소 △섬 89곳 △양식장 시설 2만 5104.5ha 등은 한 순간에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또 어업과 관광 등 바다를 기반으로 먹고사는 서해안 주민의 생계 기반도 무너졌다.

사고를 초래한 삼성은 2013년 11월 피해주민의 복리 증진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 지역발전기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출연하기로 했다. 이후 2018년 11월 태안·서산·당진·서천 피해민으로 구성된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이하 조합)’과 충남 보령·홍성·전북 5개 시·군 피해민이 세운 ‘서해안연합회(이하 연합회)’가 모금회와 삼성기금 배분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해양수산부의 감독과 모금회의 관리 하에 조합은 2028년까지 2024억원을, 연합회는 2023년까지 1043억원을 배분받아 집행하기로 했다.

충남 태안군 의항리 신노루 해변에 기름 묻은 바닷가재가 떼죽음을 당한 채 파도에 떠밀려 와 있다. 충청투데이 DB
충남 태안군 의항리 신노루 해변에 기름 묻은 바닷가재가 떼죽음을 당한 채 파도에 떠밀려 와 있다. 충청투데이 DB

기금은 각 단체가 모금회와 계약을 맺을 때 제출한 총괄사업계획의 범위에서만 사용돼야 하고, 이를 수정하려면 해수부의 동의를 통해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때만 해도 기름 유출 피해지역은 온전한 회복으로 나아간다는 기대가 감돌았다. 하지만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금 집행이 계획보다 더디면서 피해 회복도 그만큼 늦어지고 있다. 조합은 2019~2021년 약 157억 7500만원을 썼는데, 이는 총괄사업계획(336억 2400만원)의 절반(46.9%)에 불과했다. 저조한 집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합회는 마지막 사업연도에 들어선 현 시점까지 986억원이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부터 4년간 발생한 이자만 사용했다는 것이 연합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두 단체 모두 피해민을 위해 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보다 수천억원의 운영을 누가 주도할지에만 관심을 기울인 결과라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단체가 피해민을 대표해 기금을 적절하게 집행하지 못하면 감독기관인 해수부와 모금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사태를 더 키웠다.

사업기간 종료 후 남은 기금은 모금회의 수입으로 환수돼 피해민에게 쓰이는 길이 사라지게 된다. 기금 집행 정상화가 절실한 이유다. 강학순 삼성지역발전기금 태안배분금찾기 공동위원장은 "피해민이 고생해 얻은 돈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며 "폐쇄적인 조합 운영에 실제 기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모르는 피해민도 많다"고 말했다.

김중곤·김지현 기자

2007년 12월 검은 기름띠로 물든 태안 만리포의 모습. 아래 사진은 10년이 지난 5일 오후 푸른 에메랄드 빛을 되찾은 만리포의 모습. 2017.12.5 [충남군 제공=연합뉴스, 항공촬영팀]
2007년 12월 검은 기름띠로 물든 태안 만리포의 모습. 아래 사진은 10년이 지난 5일 오후 푸른 에메랄드 빛을 되찾은 만리포의 모습. 2017.12.5 [충남군 제공=연합뉴스, 항공촬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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