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도급계약서 의무 아닌 권고
사실상 발주자 동의없인 어려워

한 재건축 단지에서 작동 중인 크레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 재건축 단지에서 작동 중인 크레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충청투데이 김동진 기자] 정부가 민간건설공사에도 물가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의무조항이 아닌 권고사항이어서 건설업계 내부 반응은 시큰둥하다.

국토교통부는 민간공사에 물가변동 조정방식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고시 개정안을 마련, 지난 8월 3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공공 건설공사의 경우 국가계약법에 따라 3% 이상 물가 변동이 있을 경우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민간 건설공사는 표준계약서상 물가 변동과 관련한 기준이 모호,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의 물가상승 요인 발생에 따라 시공사가 발주자에 공사비 조정을 요구해도 관련 법조항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개정 표준계약서상 물가 변동 조정 기준을 공공 공사에서 적용중인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 방식으로 명시해 조정금액 산출 방식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정책은 공공 공사처럼 법으로 의무화한 것이 아닌 시공사와 발주자간 협의를 통한 권고조항에 불과, 실효성이 없다는 게 건설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건설업계 내부에선 금리 상승과 원자재 가격 인상 등에 따른 공사비 증액과 관련해 시공사와 발주자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생색내기에 불과한 정책으론 실질적인 물가상승분 반영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또 공사비 조정 등 건설 분쟁이 발생할 경우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계약 당사자간 합의를 통해 조정하거나, 중재법에 따른 중재기관을 통한 중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것도 형식적 조치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공사와 발주자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조정이나 중재가 지연되거나 결렬될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표준계약서는 공공 공사와는 달리 민간공사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이어서 시공사가 물가상승분 반영 등을 명시한 표준계약서를 요구할 경우 발주자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표준도급계약서 자체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발주자가 승인해주지 않으면 공사비에 물가상승분 반영은 불가능한 셈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에선 공공공사와 마찬가지로 민간공사에도 물가상승분 반영을 법으로 담보하는 실질적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충북지역 한 건설사 관계자는 "민간 공사에선 공공 공사와 달리 표준도급계약서를 통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며 "시공사가 물가상승분 반영을 명시한 표준계약서 작성을 요구해도 발주자가 이를 거절하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당초 계약금액보다 물가 상승 등으로 공사비가 늘어나 시공사의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이를 감안해 공사금액을 올려 줄 발주자가 얼마나 되겠는가"라며 "법으로 의무화하지 않는 제도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동진 선임기자 ccj17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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