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산직동 화재 대피소 가보니
이재민·봉사자 등 엉켜 아수라장
삶의 터전 잃은 민가 ‘망연자실’
[충청투데이 노세연 기자] “불이 계속 번지고 있는 와중에 사람 뿐 아니라 휠체어, 생필품, 약 등 챙겨야할 것이 산더미였고, 직원들은 급한 마음에 성인 입소자들을 품에 안아 실어 날랐습니다.”
3일 오전 9시 찾은 대전 산직동 화재 대피소는 전쟁 피난처를 방불케 할 정도로 혼란이 가득했다.
보급품을 나눠주는 사람, 내부 인원을 헤아리는 사람, 바닥에 몸을 뉘인 사람, 누군가를 찾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의 동선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모습.
총 6곳으로 나뉜 대피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곳은 화재 지점에서 약 2km 떨어진 기성종합복지관이다.
화마가 산을 뒤덮었던 2일 오후 3시경 화재지점 인근 정신 시설, 장애인 시설 관계자·입소자 700여명은 이곳 복지관으로 대피해왔다.
요양보호사 김모 씨(35)는 “어제 오후 재난문자를 받고 급하게 피신하는데 입소자는 43명이고, 직원은 12명이다보니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며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직원 한명 당 거동이 불편한 어른 3~4명을 개인차로 실어 나르면서 필수 복용약·이동보조기구 등 물품들까지 챙겨야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급박한 대피 과정에서 입소자들의 생리현상을 어찌할 방법이 없어 개인별 신체증상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모두 기저귀를 착용시켜야 했다”며 “대피소에 도착한 이후에도 적응을 힘들어하는 입소자들을 달래며 어젯밤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불이 난 산직동 일원은 정신·노인 시설 등 사회 복지 시설이 밀집해 있는 도심 외곽 지역이다.
때문에 대피소를 찾은 시민들은 노인, 장애인 등 보호·복지시설 입소자들이 대다수였다.
오전 10시경 경로당에서 만난 모 요양원 관계자는 “어제 오후 긴급 대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짐을 챙겨 구청에서 보내준 버스를 타고 몸을 피했다”며 “다행히 우리 시설에는 신속하게 버스가 지원됐고, 물·음식 등 구호품 보급도 즉시 이뤄져 현재는 직원과 어르신들 모두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황”라고 말했다.
오후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복지시설 대피소 쪽은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였지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민가 쪽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이번 화재로 거주지가 전소됐다는 연옥희(69)씨는 “어제 불이 우리집 쪽으로도 번져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불을 꺼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요양원 쪽이 더 급하다며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긴급상황인 점은 이해하지만, 사회적 약자만 시민인가 싶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탄했다.
이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인데도 막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며 “어제부터 식사도,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잠도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애끓는 마음을 전했다.
노세연 기자 nobird@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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