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甲辰年) 새해 새날에 대청호 인근에서 해맞이를 하였다. 오늘과 내일, 지난 1년과 새해의 구분이지만 모두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선을 긋는 일(日)과 시간의 구분은 인간이 만든 척도에 불과하다. 자정에 1초를 사이에 두고 환희와 해를 보며 기원적 각오를 담는다. 아침공기는 차갑지만 눈은 빛나고 얼굴은 상기된 표정으로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은 같을 것이다.정월의 새날이 1일 이듯 사물의 순서와 인간사 생각 또한 처음이 존재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의 앞에는 시초(始初)가 있고, 어떤 일이건 발단
눈이 내린다. 매봉산자락 기슭에서 훅하니 불어오던 바람결에 가랑눈이 따라왔나 보다. 분분히 날리는 눈이 언뜻 춘삼월 낙화와 같다.소담스러운 눈송이도 좋고, 바람 타고 흩날리는 풋눈도 그냥 맥 칼 없이 좋아서 뛰어다녔던 날이 있었다.이십여 년 전 첫눈 오던 날이 문득 생각난다. 어머니가 홀연히 하늘길에 오르시고 두어 달 뒤 첫눈이 왔다. 홀로 남겨진 아버지가 두문불출하시며 말수를 줄이던 때라 첫눈으로 말거리를 찾았다 싶어 아버지께 달려갔다. 공허한 기운이 감도는 거실에서 아버지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댄 체 눈을 감고 계셨고 티브이만
12월 들어서면서 하루가 멀다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각종 송년 모임의 연속이다. 모이기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적 유대감이 만들어낸 끼리끼리 문화일 것이리라. 소소한 친구 모임, 선후배 지역 모임도 많고, 각 기관이나 단체의 한해를 결산하는 시상식 행사가 특히 이목을 끈다.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선심성 수상자도 있을 것이다. 한 단체장의 수상자가 한두 명이 아니고. 적게는 예닐곱 명에서, 많게는 십여 명이 공동 수상을 하는 경우는 그 상의 가치를 가늠하기 힘들다. 어떤 문학상은" 때 되면 누구나 받는 상"이라는 수상자의 가벼운 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베란다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할머니가 하얀 승용차를 향해 두 손 모아 절하고 있었다. 네 바퀴를 정성스레 어루만진 후 절을 하고, 범퍼를 자식 엉덩이를 두들겨주듯 다독거리고는 연신 허리를 굽혔다. 사찰이라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다지만 아파트 주차장에 서 있는 승용차를 두고 일어나는 일이니 내겐 관심사였다.조금 있으니 중년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는 할머니가 정성스레 절을 올리던 그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차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네 살배기 손주의 어린이집 알림장을 훑어보다 웃음이 터졌다. 아이의 하루 생활이 담겨 집으로 보내오는 알림장에 보육교사가 쓴 글을 보니 천진난만한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어린아이들은 또래와 상호작용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가도 금세 토닥거리는 일이 다반사란다. 그 상황을 아이들끼리 잘 풀어나가는 것도 배움의 한 과정이기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교사가 굳이 개입하지 않는단다. 상황 전개는 이랬다. 손주와 친구가 블록 놀이를 하다 서로 같은 걸 집어 들고 실랑이를 벌였다. 또래의 소견으로 양보보다는 쟁취하려는 의도가 먼저 앞섰는지
요즘 주부들을 만나면 "김장했냐"는 인사로 안부를 나눈다. 이럴 때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언제 김장할지 일정을 잡고 아이들도 부르고, 어릴 적 부모님의 김장하는 날처럼 가마솥에는 장작불을 피워 구수한 두부도 만들고. 돼지고기도 듬뿍 삶아 가까운 이웃들과 거하게 잔치하면 좋은데 아파트 생활이 그리 쉽지 않다.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 방식이 바뀌면서 좋은 생활문화도 멀어져 가는 것이 아쉽다.몇 년 전 양쪽 어깨 시술을 하고 난 후부터는 주변에서 가져다주는 김장에 부족한 만큼 절임 배추를 사다가 양념에 버무리는 것이 전
이천 설봉산 자락을 느릿느릿 오른다. 산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길목이 스산하다.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잎과 열매들이 생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끝을 향한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나뭇잎의 조락을 보며 습관처럼 가슴앓이한다. 이유 없이 서글픔이 밀려오고, 부질없는 상념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내 마음도 따라 술렁거린다.통나무 계단을 오른다. 낙엽 한 잎이 발밑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떨켜’가 밀어낸 흔적이다. 떨켜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서 수분 통로를 차단하며 만들어지는 특별한 세포층을 말한다. 산기슭엔 떨켜가 밀쳐낸
사방을 둘러봐도 곱지 않은 곳이 없다. 꽃은 분명 아니건만 그윽하게 아름다운 풍경들이 세상천지 곳곳에 내렸다.나무마다 지난여름 땡볕을 견디고, 광풍을 지나온 아픈 궤적을 단풍이란 흔적으로 물들이는 겸허한 입명을 받아드리는 계절이다. 나도 같은 계절과 같은 시간을 함께 달려왔는데 지금쯤이면 내 그림자도 저리 곱게 비추어질까. 가을빛이 완연한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니 나의 형상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 같아 문득 움츠러든다.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내가 지나온 시간을 뒤집어 보니 참 숨 가쁘게 달려왔다. 깜냥이 되는지 재보지도 않은 채
퇴근하면 습관처럼 우편함을 들여다본다. 딱히 기다리는 소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신간 서적을 보내주는 작가들은 얼굴을 마주한 듯 반가움이 앞선다. 하지만 한두 번 안면이 있는 상대가 보내는 축제나 행사의 초대장은 조금 불편할 때도 있다. 참석하려니 다른 일정과 겹치기도 하고, 주말 휴식이 필요한 데 고민이 되는 경우도 있다.지금 전국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축제가 국민을 호객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강력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쟁점이 되는 시기에 문화 예술이 민심을 긍정적인 정서로 이끄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성공한
남은 날들을 첫날이자 마지막 날로 살고자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마흔에 거리 한복판에 쓰러진다. 보름 만에 의식을 찾은 그의 몸은 오른쪽 신경이 모두 마비된 상태이다. 1급 중증장애인 된 그는 의학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루아침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북토크가 있었다. ‘해맑은 영혼처럼’ 밝고 맑은 작가를 만났다. 마비된 한 쪽으로 올곧게 걷기도, 팔을 쓰고, 말하기도 힘들었을 20여 년 동안, 자신을 세상에 놓고 적응해 간 과정을 글로 쓰며 삶을 치유했다. 작가는 운전부터
전화를 받았다. 치매가 걸린 시어머님을 모시던 친구가 상을 당했으니, 저녁에 문상하러 가자고 한다. 조문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찻집에 들렀다. 건망증이 점점 심각해진다며 치매가 아닐까 이구동성 이야기를 쏟아냈다. 우리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서로를 토닥였다.‘보이고 싶지 않은 나’를 드러내며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시아버님도 치매가 있었다. 특히 먹는 것에 집착하셨다.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약봉지처럼 싸서 음식을 서랍 구석구석에 숨겨 두셨다. 당뇨로
폭풍우가 지나간 여름 끝자락 새벽바람을 가르며 충북교육의 미래를 걱정하고 올바른 학교 문화를 조성하려는 조찬 강연에 참석하였다. 윤건영 충북도교육감께서 강연자로 나서 "디지털 시대에도 변치 않은 사실은 독서를 많이 하여야 꿈을 키울 수 있고, 지식보다는 인성이 더 중요하다"라는 내용이었다.대가족 시대에는 어른의 서열이 분명하였다. 밥상을 받으면 조부모님이 수저를 드시기 전에는 먼저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위계질서였다. 곤궁한 시절 이웃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도 집안의 제일 어른이 드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