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베란다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할머니가 하얀 승용차를 향해 두 손 모아 절하고 있었다. 네 바퀴를 정성스레 어루만진 후 절을 하고, 범퍼를 자식 엉덩이를 두들겨주듯 다독거리고는 연신 허리를 굽혔다. 사찰이라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다지만 아파트 주차장에 서 있는 승용차를 두고 일어나는 일이니 내겐 관심사였다.

조금 있으니 중년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는 할머니가 정성스레 절을 올리던 그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차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20여 년 가까이 휴일을 제외한 아침 일곱 시 반, 할머니는 어김없이 주차장에 나와 같은 행동을 했다.

얼마 전, 등산을 나선 길에 할머니를 만났다. 중년 남자가 차를 타고 막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떼지 않았다. 얼굴은 핏기도 없이 뼈만 도드라지게 보였다. 꼿꼿했던 허리는 기억자로 굽었고 몸은 예전보다 더욱 왜소했다. 나는 발걸음을 돌리는 할머니에게 어렵사리 말을 건넸다.

"할머니, 왜 매일 승용차에 절을 하세요?"

할머니가 옅게 웃으며 사연을 들려주었다. 차 주인은 둘째 아들인데, 가족을 뒤로하고 밖으로만 나돈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 여태 결혼하지 않고 자신과 살고 있단다. 큰아들은 결혼했지만, 아내가 집을 나갔고, 딸은 이혼해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산다고 덧붙였다.

할머니는 이 모든 일이 어미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자식들이 이제라도 순탄히 살길 바라는 마음에 늘 기도한단다. 매일 승용차에 비는 일은 바로 둘째 아들의 안전한 출퇴근길을 위해서였다. 그뿐이겠는가. 남은 자식도 할머니의 기도로 평안하게 사는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한 어미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다. 자식이 순탄히 잘 살길 바라는 이 세상 모든 어머님의 마음이 이러하지 않을까. 나도 할머니가 바라는 소망이 꼭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더해 본다.

모처럼 서울에서 아들이 왔다. 고속버스로 오가던 아들이 승용차를 타고 왔다. 결혼하려면 집 장만이 먼저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못마땅했다. 같이 주차장으로 갔다. 나는 아들의 차 범퍼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아들 안전하게 모시고 다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따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들이 어미 마음을 아는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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