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강미란 수필가
강미란 수필가

이천 설봉산 자락을 느릿느릿 오른다. 산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길목이 스산하다.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잎과 열매들이 생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끝을 향한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나뭇잎의 조락을 보며 습관처럼 가슴앓이한다. 이유 없이 서글픔이 밀려오고, 부질없는 상념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내 마음도 따라 술렁거린다.

통나무 계단을 오른다. 낙엽 한 잎이 발밑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떨켜’가 밀어낸 흔적이다. 떨켜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서 수분 통로를 차단하며 만들어지는 특별한 세포층을 말한다. 산기슭엔 떨켜가 밀쳐낸 참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잎이 추운 겨울을 살아남기 위해 잎을 떨어뜨린 흔적이 가득하다.

나뭇잎이 떨켜를 만드는 것은 잠시 멈추어 지난날을 감사하는 시간이고, 봄에 새로운 잎을 피우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준비이리라. 가을이 오면 나뭇잎은 가야 할 때를 알고 자리를 내어준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떨켜를 만들어 스스로 유전자를 몸마다 새긴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을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으리라.

누가 제때를 알고 떨어지는 나뭇잎의 아름다운 끝맺음을 보며 처연하다고 했던가. 떨켜는 자신에게 남은 수분으로 버티다 생을 마감하는 아름다운 결별이다. 어쩌면 나무와 나뭇잎은 서로를 위해 처음부터 이별을 준비했는지 모른다. 자신을 길러낸 모태의 모든 것을 주고 떠난 감사의 흔적이고, 나를 덜어 남에게 베푼 헌신의 흔적이다.

가을은 떨켜의 계절이다. 내 삶도 늦가을쯤이다. 설봉산 정상이 가까워져 온다. 배낭에 쓸데없는 물건들 때문인가 점점 숨이 차오른다. 그동안 소중하다고 여기며 품고 살았던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이었던가. 그 무엇도 내려놓고 살지 못했던 미련한 삶이었다. 남은 인생의 배낭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버릴지 가을 단상 앞에서 상념에 잠긴다.

나무가 겨울이 오기 전에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또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내 삶의 여정에서 또 다른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시기이다. 자식들도 제 자리를 잡고, 삶의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진 나이다. 그 자리에 내 삶의 새로운 떨켜를 만들어 볼 일이다. 나무는 떨켜를 만들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봄을 맞이할 수 없다.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내 안에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라도.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인생의 정원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떨켜처럼 덜어내는 삶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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