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학과·무전공 확대 ‘지방대 죽이기’ 우려]
무전공 학생들 인기학과 쏠림현상 걱정
인원 맞춰 교수·강의실·도구 준비 무리
전공 다변화 등 대학 자율성 보장 호소

한 대학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대학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충청투데이 김중곤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무학과·무전공’ 확대를 놓고 지역 대학가에선 존폐를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지역 대학들은 정부의 하향식 정책보다는 대학 스스로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넓히고 학과 간 장벽을 허물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8일 충청권 대학가에 따르면 지역에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2025학년도부터 무학과 확대를 요구받을 국립대다.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1년가량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무학과의 기반을 준비하기 빠듯하다는 이유다.

교육부는 2025~2026학년도 입시에서 수도권대학과 국립대에 적용할 무학과 확대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를 대학혁신지원사업과 연계하는 계획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충청권 소재 한 국립대 관계자는 "전체 모집 정원의 30%를 무학과로 선발하라는 얘기도 나온다"며 "무학과 입학생이 추후 특정 인기학과로 쏠릴 것이 분명한데 이에 맞춰 교수, 강의실, 실습도구를 준비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무학과 확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역 사립대도 마찬가지다.

당장 2025~2026학년도에는 정부의 무학과 정책을 강요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추후 해당 정책이 전국 모든 대학으로 확산한다면 생존 경쟁이 더욱 험난해지기 때문이다.

입시 과정에서부터 학과 경계를 허물면 수험생 입장에서 학과보단 대학의 이름값을 더욱 따지게 돼 사립대의 신입생 모집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 지역 대학가의 우려다.

이준재 한남대 기획처장은 "무학과 확대로 정원을 못 채우면 현실적 이유로 폐과하는 전공이 하나둘 늘어나고 결국 보장하려던 학생 전공 선택권이 더욱 축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학들은 무학과가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등 특정인기 학과로의 학생 쏠림을 가속화해 철학, 인문학 등 기초 및 순수학문의 기반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혁우 배재대 기획처장은 "교육부는 무학과를 혁신 사례로 강조하지만 선진국의 모든 대학이 이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며 "학문 경쟁력이라는 토대 위에서 고등교육을 쌓아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이유에서 지역 대학들은 이미 대학 스스로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는 여러 정책을 자체 추진 중이라며 교육부가 일방 정책으로 압박해선 안 된다고 한 목소리다.

이성상 목원대 미래전략본부장은 "대학 과정에서 학생의 진로는 계속 바뀔 수 있다"며 "교육부는 오히려 입시 단계보다 학생의 재학 기간 전공 이동, 전공 다변화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익명의 대전 소재 입학처 관계자도 "이미 문·이과를 통합한 학부를 운영 중이고 학생이 직접 설계한 전공으로도 졸업할 수 있다"며 "대학 차원에서 혁신을 추진하는데 정부가 무학과 비율을 정해 놓고 못 채우면 지원을 안 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중곤 기자 kgon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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