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투데이 등산편-빈계산]
주차장~수통폭포~빈계산 ‘가장 쉬운 코스’ 선택했지만
끝없는 나무·돌계단… ‘지옥 계단’ 오른 끝에 정상 도착
정상 조금 아래에 위치한 포토존… 사진 찍을 맛 절로
하산 후 계곡물 세수에 막걸리 한사발… 짜릿한 기분

[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산은 ‘삶’과 닮았다. 오르기 전엔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만 든다. 그저 산이 너무나 크고 높아만 보인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아득함은 그저 ‘과거’이자 ‘과정’이 된다. 낑낑대며 올라왔던 길도 내려갈 땐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이치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일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산에 오르는 게 아닌가 싶다. <편집자 주>

힐링투데이의 첫 산은 ‘빈계산’이다.

이 산은 계룡산 동쪽 자락인 수통골 지구에 속해있다. 414m의 다소 낮은 산으로 만만해서(?) 선택했다. 또 부모님과 몇 번 등산한 경험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은 됐다. 그도 그럴것이 ‘여름 등산’은 처음이었다. 입구에서 아니다 싶으면 돌아올 작정이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었다. 이번 등산 희생양(?)인 윤지수 기자(이하 산악인2)와 회사에서 만났다. 놀랍게도 우리 둘은 이 등산을 오래 준비했다. 다이소에서 쿨토시와 쿨스카프까지 샀다. 얼굴은 선크림으로 칠갑했으며 등산화를 챙겨 신고 엄마의 등산 스틱을 빌렸다. 백팩을 메고 머리는 손수건으로 동여맸다. 둘이 함께하니 영락없는 ‘산악회 회원들’ 같았다. 당장 백두산에 간다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갈마동에서 103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수통골’에서 내렸다. 다행히도 아직 오전인지라 그리 뜨겁진 않았다. 지도를 보며 ‘수통골 공영주차장~수통폭포~빈계산’으로 이어지는 가장 쉬운 코스를 택했다. 매점에서 얼음물을 사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다 보니 자연스레 등산객 무리를 따라 올라가게 됐다. 물줄기를 따라 걸으니 시원했다. 그러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쉬운 코스’가 목표였기에 나름 추리를 해 가벼운 옷차림의 등산객들을 뒤따랐다. 그들의 옷을 보니 험한 코스를 탈 것 같진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수통폭포가 나왔다. 한눈에 시원함이 느껴졌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모두 산이 아닌 물에 있었다. 계곡에 발을 담그며 쉬고 있었다. 그게 목적인 듯 보였다. 조금 찝찝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산에 올랐다.

어느 정도 오르니 평탄했던 길이 가파르게 바뀌고 있었다. 갑자기 난이도가 확 오른 느낌이었다. 표지판은 ‘금수봉삼거리’를 안내했다. ‘아뿔싸’ 싶었다. 부리나케 등산 지도앱을 깔아 열었다. 역시나 잘못 온 것이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우린 금수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금수봉 코스는 다소 난이도가 높아 자신이 없었다. 산악인2와 논의 끝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내려와 갈림길에서 아까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헤매다 보니 시간이 지체돼 해가 뜨거워질 것이 염려됐다. 걸음을 바삐 옮겼다. 끝없는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올라야 했다. ‘천국의 계단’이 따로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빈계산을 만만하게 본 값을 톡톡히 치르는 기분이었다. 이제 보니 빈계산은 그저 닭의 산인 ‘빈계산(牝鷄山)’이 아니라 용인 ‘계룡산(鷄龍山)’의 새끼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무가 울창해 올라가는 내내 그늘이란 점이었다. 해가 보이지 않아 모자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조금 위안이 됐다. 사무실에서 ‘저질 체력’을 키워온 터라 중간중간에 아주 열심히 ‘쉬었다’. 산악인2가 싸온 오이와 토마토를 먹으며 힘을 보충했다. 벌레가 참 많았지만 기피제를 잔뜩 뿌린 덕분인지 많이 물리진 않았다.

그러나 미스터리하게도 가도 가도 정상은 나오지 않았다. 정신 승리가 필요했다. 헬스 트레이너가 추천하는 노래 TOP 1OO을 들으며 의지를 다졌다. 생각해 보니 산은 이어폰 없이 공개적으로 노래를 들어도 이해해주는(?)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의 한계가 다가오자 ‘질문쟁이’가 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야해요?"라고 계속 물었다. 그들은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가요"라며 용기를 줬다. 고마웠다. 문제는 그 대답을 30분째 듣고 있단 점이었다. 이쯤이면 정상이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또 땀을 흘려대며 몇 번의 ‘계단 지옥’을 지나니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정상석이나 정자가 없어 다소 밋밋하긴 했다. 정상이 맞나 싶었다. 다른 어르신들께 정상임을 확인받고 나니 묘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익히 들은 ‘빈계산 포토존’은 정상보다 조금 아래에 있었다. 그 바위에 서니 봉우리뿐만 아니라 대전 도심이 한눈에 보였다. 사진 찍을 맛이 났다. 숨을 고른 뒤 내려가기 시작했다. 땀을 많이 흘린 덕분이지 배가 매우 고팠다.

내려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넘어질까 무서워 스틱을 꽉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산은 또 금방이었다. 다 내려와 계곡물에 세수를 하니 세상 시원했다. 굶주린 배를 잡고 식당에 뛰어 들어갔다. 두부·콩국수와 함께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니 정말 행복했다. 등산하며 쌓인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다음날 다리 알이 걱정되긴 했지만 왠지 뿌듯했다. 그저 산 하나 올랐을 뿐인데 조금 성장한 기분이었다. 산악인2와도 뭔가 끈끈한 정이 생긴 듯했다. 힘들었지만 좋았다. 다음 등산을 생각하면 올라갈 일에 대한 두려움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복하고 내려오면 느껴질 그 짜릿함 또한 기대된다.

김윤주 기자 maybe0412@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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