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훈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불패 신화의 대한민국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걷잡을 수 없도록 커진 전세 사기의 빠른 확산과 증가다. 이 범죄는 대한민국의 전세제도가 갖고 있는 불완전한 법과 시스템을 범죄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세제도는 오랜 기간 존재했고 전세사기 역시 매년 발생했음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사기와 사고를 구분할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준을 임대인의 기망행위 여부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며 일반 사기범죄와 다르지 않게 규정하고 있다.

전세 계약은 일반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거래를 통해 이뤄진다. 합법적인 계약 절차에 따라 진행하며 이 과정은 국가의 법과 시스템을 통해 완결된다. 국가는 임대차보호법을 통해 전세 계약에 있어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부당 계약을 방지한다. 또 부동산등기법을 통해 계약 목적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주택의 형태가 다양해졌음에도 법과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대표적인 예로 다가구주택이 있다. 다가구는 90년도 주택보급 활성화를 목적으로 생겨난 주거 형태로 건축법상 세대별 구분등기가 불가능한 단독주택에 포함된다. 이는 다주택 보유에 따른 민간임대업 위축을 방지하고 주택 보급을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의 일환이었다. 즉 한 채의 다가구 건물을 소유할 경우 1주택 소유자이지만 임차인을 최대 19명까지 계약할 수 있는 구조다. 2010년대 초반까지 다가구주택은 주택보급 활성화 및 주거 사다리의 역할을 비교적 원만하게 수행해왔다. 소자본 투자를 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에 따라 임대인의 수익이 보장됐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부동산 열기는 2021년 말까지 끝없이 올라갔고 소자본 투자는 무자본투자로 변질됐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서 범죄의 가능성을 찾은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변질된 임대인들은 기존의 법과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음을 알았고 이를 수단으로 더욱 많은 건물을 매입·건축했다. 현행법상 신축건축물은 가치 기준을 따질 수 있는 근거자료를 임차인은 알 수 없다. 또 다가구의 경우,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 두 문제는 임차인이 안전한 계약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건물 가치 대비 근저당의 비율,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총액은 안전한 계약을 위해 반드시 공유돼야 할 정보다. 하지만 아직도 임차인에게 공개돼야 할 정보들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주택보급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주거 형태가 도입된 후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독주택에 다수의 임차인이 계약해야 하는 기이한 형태에 대해 국가는 전혀 개선하지 않았다.

전세 계약은 개인과 개인의 거래로 이뤄진다. 다만 거래의 수단을 만든 것은 정부다. 전세사기를 임차인의 단순 부주의와 임대인의 악행으로만 바라본다면 문제는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정부는 그간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과실인정과 배상 그리고 예방을 위한 조속한 개정과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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