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연애관으로 구애 갑질
외모통제·가스 라이팅 사례도
"카이스트 나온 학부모가 문제냐"
공립 유치원 교사 통화녹음 공개
사회적 지위 따라 갑질 인식差 커

갑질. 그래픽 김연아 기자. 
갑질. 그래픽 김연아 기자.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원치 않는 구애부터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까지 갑질의 형태는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위계를 나타내던 가치가 바뀌면서 갑을 관계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0월14일부터 21일까지 직장인 10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11.0%는 구애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지난 1월 직장갑질119에 신고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총 138건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관련 상담은 7.2%(10건)였다.

신고 내용은 강압적 구애, 악의적 추문, 신체 접촉 등 성추행, 외모통제, 가스라이팅 등으로 나타났다.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 사례 32건 가운데 강압적 구애가 25%(8건)로 가장 많았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입사 후 직장 상사 B씨로부터 원치 않는 구애를 받았다. B씨는 A씨에게 "너 같은 애인이 있으면 좋겠다", "나랑 사귀면 안 되겠느냐"며 지속적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B씨의 구애에 지친 A씨는 B씨에게 화를 내며 구애를 멈춰달라고 요구했고, 그날부터 B씨의 갑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B씨는 직장동료들에게 A씨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고, 술자리에서 A씨의 업무 성과를 근거 없이 지적하며 회사를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A씨는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B씨의 갑질에 시달려야만 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잘못된 연애관에서 구애 갑질이 비롯된다"며 "직장 동료를 구애의 대상으로 삼아 원치 않는 강압적·지속적 구애로 근무환경을 악화시키고 심지어는 일터를 떠나게 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사회적 위계의 양상이 달라지면서 누구나 갑질 가해자가 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은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교사가 그동안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려 왔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진 않았다.

지난 1일에는 한 공립유치원에 근무하는 교사가 4년 전 한 학부모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며 통화 녹음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 학부모는 교사에게 "당신 어디까지 배웠어요 지금? 카이스트 경영대학 나와가지고 MBA까지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했는데 카이스트 나온 학부모들이 문제아냐"라고 했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갑질을 인식하는 격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위 관리자와 일반사원은 직장갑질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차를 보였는데 ‘아무 때나 SNS’에서 가장 큰 차이를 나타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업무시간이 아니어도 SNS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질문에 관리자는 55.9점, 일반사원은 73.1점을 줘 17.2점의 차이를 보였다.

김성준 기자 junea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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