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본 한국교통대 스포츠산업학전공 교수

우리 주변에 분노가 만연하다. 아주 작은 일에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면서 폭발하곤 한다. 나만 소중하다는 억지와 무차별적 폭력으로 이렇게 분노가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감은 우리 사회를 점점 경직되게 만들고,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휴머니티의 결핍 시대이다.

공교육을 굳건히 지키려 했던 선생님들도,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는 우리 이웃도 일방적 분노의 희생자이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 사고들은 분노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작금의 시대는 분노의 시대가 되었다. 비이성적인 분노는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분노 관리에 대한 지원과 예방대책이 절실하다.

해답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스포츠 문화를 보자. 스포츠 경기에서는 격렬한 신체 접촉과 수많은 경쟁에도 상호 간에 표출되는 분노는 제한적이다. 그 이유는 스포츠 현장에서는 분노를 제한하고, 억제하는 암묵적 규칙인 스포츠맨십이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맨십은 사전적으로 "스포츠 현장에서 각각의 관계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동업자 정신"으로 정의된다. 경기장 내에서는 물론 경기 이외에서도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경쟁 관계에서 표출되는 분노를 조절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분노 조절의 원천인 스포츠맨십을 분해하면 규칙준수, 최선, 승복, 공정한 경쟁, 상대방의 존중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상대방의 존중’이 모든 문제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다. 때론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승부의 결과보다 과정에 더 집중하게 된다. 과정의 숭고함에서 동업자 정신과 상대에 대한 예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존중의 목마름에 지쳐서 모든 인간관계를 포기하게 되는 것에 대한 해답은 아닐까?

요즈음 우리 지역도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대처 방식의 혼란에 비롯된 지역대학 간의 통합, 대학과 지자체와의 협력관계 등이 그것이다. 전례 없는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학생도, 대학도, 지자체도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처 방식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내가 살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아픔을 주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라는 착각은 궁극적으로 나도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분노를 분노로 대응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존중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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