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 대전시장

이장우 대전시장
이장우 대전시장

사회에 있어 공공의 역할은 무엇일까?

공공은 하나의 제도와 관습으로 구성원들로부터 권한을 부여 혹은 위임 받은 존재다. 세금을 거두고, 질서를 통제하며, 복지와 기업 지원 등 약자를 보호하는 한편 공동체의 미래를 우상향으로 만들어가라는 책무를 부여 받았다.

지금 열리고 있는 대전 0시 축제를 보며 다시 한번 공공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공직자들의 자세 등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대전 0시 축제 현장을 다니며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환한 얼굴이다. 모두가 웃으며 기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먹거리를 즐긴다. 3대가 함께 다니는 화목한 모습이다. 어르신들은 먹거리 장터에 삼삼오오 모여 회포를 푼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젊은 사람들이다. 연인들이, 친구들이 만나 얼싸안고 함께 노래 부르고 가락에 맞춰 몸을 흔든다. 그 가운데 압권은 길거리 떼창과 춤판이다. 대전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가 있었는가 하고 놀랄 정도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또 이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노래가 이렇게 많았는가 하고 놀라게 된다. 운동권 노래만 알고 있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대이고, 그런 이들이 자랑스럽다.

대전시가 만들어진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시민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낀다. 차가 주인이던 중앙로가 사람들이 주인이 되면서 공간은 새로 태어났다.

특히 젊은이들이 열창하고, 지칠 정도로 춤동작을 함께 하는 장면을 접하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반성이다. 이 젊은이들의 열정을 기성세대가 못 풀어 주었구나, 진작에 이런 환경을 제공했어야 하는데 못했구나, 젊은이들은 재미있게 놀 준비가 되어 있는데 우리가 외면했구나 하는 등의 반성이 크게 들었다.

지역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을 통해 적절한 수입을 얻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며 회사나 지역이란 공동체는 생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특히 지금처럼 인구 감소 시대에 사람은 돈보다도 중요한 결정적 자원이다.

사람이란 존재를 보면 의미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의미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재미가 빠지면 활력이 사그라진다. 호모 루덴스란 말이 사람에게 놀이의 중요성을 압축적으로 알려준다. 놀이를 통해 사람이 유연해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며, 창의성도 커지는 것이다.

대전의 경우는 의미는 컸지만, 재미는 아쉬웠다. 재미란 것도 결국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그동안 통 큰 상상력이 부족했다. 재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규모와 깊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작은 규모로는 그 만큼의 재미만 있다. 큰 규모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만든다. 동시에 그 이상의 리스크도 따른다. 날씨와 안전, 청결 등등 변수가 많아진다. 이번에도 막판까지 태풍이 변수였다. 도로 통제에 따른 민원이나 인파 집중으로 인한 안전 관리 등의 리스크도 많았다. 여러 변수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투입이 큰 만큼 손실도 커진다.

이번 대전 0시 축제는 대전 역사상 처음으로 1㎞에 이르는 중앙로를 다 막았다. 중앙시장에서 으능정이 거리에 이르는 구간에 먹거리 장터를 마련하고 곳곳에 디제잉을 할 수 있는 코너들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열정을 맘껏 발산하고, 서로 흥이 올라 신난 모습은 모두를 흥겹게 했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 주는 매력도 상승 작용을 했다.

대전 0시 축제는 원도심이 대전의 실질적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대전의 미래를 만들어갈 젊은이들이 원도심에서 놀거리를 즐기고, 크리에이터들의 성지가 되며 대전 문화의 중심 거점으로 조성되면 대전의 활력은 보장된다. 경제는 유성 및 서구, 재미는 원도심이란 두 개의 엔진이 갖춰지며 젊은이들이 대전에서 성장하고 일자리도 대전에서 갖게 되며 선순환 구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원도심 활성화는 대전에서 1시간 거리의 다른 지역과의 시너지 효과도 예상된다. 충북 옥천 보은 영동, 충남 금산·논산·계룡·공주, 경북 상주·김천, 전북 완주·전주·무주·진안·장수 등의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문화생활 충족을 위해 대전을 찾게 될 것이다.

미국 시애틀이나 라스베이거스, 보스턴, 독일 프랑크푸르트 뮌헨 함부르크 등등의 도시들로 거점 도시가 있고 그 주변으로 광대하게 생활권이 형성되며 역할 분담을 통해 지역민들이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대한민국은 600년 이상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이 한 곳으로만 몰려드는 형국이었다. 이번 0시 축제를 계기로 대전 원도심이 중심 거점 역할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나라에 서울 말고도 놀이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만들어지며 국가 전체에 새로운 활력이 돌 것으로 상상된다. 여기에 과학교육, 보문산, 현충원 등등의 콘텐츠가 가미되면 상승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맥락에서 대전시는 원도심 일부 구역 개방의 정기화를 검토하고 있다. 원도심 일원이 주말에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지역 젊은이들의 놀 공간이 확보되는 것이고, 젊은이들의 열기와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결합하면 대한민국에는 그동안 없던 지역 기반의 콘텐츠가 스케일업되며 지속적으로 생산될 것이다.

상상해보자. 독일 라이프찌히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나 미국 보스턴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영국 에든버러와 같은 지역의 문화 공간이 만들어진 모습을. 대전 0시 축제는 대전이 그동안 갖지 못한 압도적 스케일의 축제로 출발하며 많은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남은 기간 0시 축제를 안전하고, 알차게 즐기자. 놀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 내며 자유 도시 대전, 대전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머리에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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