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선 제16대 대전시간호사회 회장
현장 경험 토대로 교육 제도 개선 ‘온힘’
환자의 아픔에 진실된 공감 가장 중요
간호법 제정은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
법률 제정 반대할 법리적 타당성 부재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 위한 상생 법안
2025년 초고령화 사회 대비 꼭 필요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간호법의 대통령 공포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까지 열렸다. 대전지역 주간보호센터와 노인정, 요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간호법에 대한 조용한 홍보를 이어온 대전시 간호사회. 그 중심에는 박순선 제16대 대전시간호사회 회장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다. 평생 간호사로서 묵묵히 환자를 돌봐온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의료계 갈등이 첨예한 간호법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 주>

-대전시간호사회 16대 회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은.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되는 해에 간호사회 회장이 돼 영광스럽고 한편으론 어깨가 무겁다. 후배 간호사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간호사들의 처우개선과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지역 최대 규모인 충남대병원에서 쌓은 임상 경험과 대전과학기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 쌓은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간호 환경 전반을 개선할 것이다. 환자의 안전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교육 제도를 개선해 양질의 간호인력 양성에 힘쓸 것이다. 이와 함께 대형병원과 요양병원 등을 포함한 중소규모 병원들 간 네트워크를 향상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대전시간호사회 회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협회 간호사회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

-간호법 제정안이 이슈다.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는.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들에게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다. 우리나라는 간호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간호법은 없는 나라다. 간호사 1인당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환자를 간호하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부담과 압박은 나아지질 않고 있다. 간호사는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돌봐야 할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간호법은 사명감 하나로 희생을 감내하며 간호하는 간호사들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기본법이다. 그동안 명확한 업무 범위를 명시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의료 공백을 메꾸며 일인 다역을 해왔다.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안전한 간호를 실천하기 위해 간호법은 꼭 필요하다.”

-간호법 제정을 두고 보건의료직역들의 반대가 거세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 보건의료 직역들이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반발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주장에서 국민과 환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법률 제정에 대해 반대하려면 법리적으로 타당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간호법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노인 등 병원 진료를 받으러 외출하기 어려운 분들에겐 간호사의 돌봄이 필요하다. 이는 초고령화 사회 속에서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며, 노인이 아니어도 간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 숙련된 간호사들이 현장에 많아 남아 전문가의 역량을 발휘해 이 분들을 돌봐야 한다.”

-간호법이 약소 의료직역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간호법은 간호인력의 열악한 근무환경 등을 개선하기 위한 상생 법안이며, 임상병리사나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등의 업무를 침해하지 않는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면허 범위 내에서 업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력근무제와 육아휴직 등 근로자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근무 중 식사 시간마저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이 간호사들의 현실이다. 그동안 환자를 위해서 간호사가 일정 부분 희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배워왔고 교육하고 있지만 신규 간호사들에게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다독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이런 구조에서는 경력 간호사가 간호직을 그만두고, 신규 간호사가 그 자리를 메꾸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간호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수의 환자를 배치하고, 정해진 범위를 넘어선 일을 시키지 않으면 간호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간호사가 안전한 환경에서 간호해야 환자의 안전도 보장된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이익을 위한 법이 아니고 초고령화 사회에 국민 건강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상생 법안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39년간 충남대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대전 간호전문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1982년 5월 충남대병원에서 간호사로서 일을 시작했다. 2020년 1월 6일 간호부장을 맡고 현재 대전과학기술대 간호학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충남대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환자들을 만났지만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충북 옥천에서 오셨던 환자분이 기억에 남는다. 수술을 잘 끝내고 저를 포함해 흉부외과 직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했었다. 제 고향이 영동이라서 그런지 영동 지역 환자들이 저를 찾아서 진료 받으러 오시는 경우도 많았다. 그분들이 저를 만나서 더 만족스러운 진료였다고 말할 때마다 역시 환자를 돌볼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과 공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환자들과 좋은 관계를 잘 맺었기 때문인지 간호부장을 그만두고 난 뒤에도 여전히 병원으로 저를 찾는 환자들 전화가 온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동안 간호사로서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행했던 일들이 떠올라 뿌듯하다.”

-간호사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79학번인데 그 당시만 해도 직업군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사회적으로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기가 높았고, 간호사가 되면 끝까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1982년 그렇게 간호사가 되고 보니 내 적성과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수술실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해 28년간 수술실 간호사로서 경력을 쌓았다. 환자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꼈다. 간호사라면 당연히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간호사로서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시했던 점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아픔에 진심 어린 공감을 해주는 것이다. 투석 환자를 위한 인공신장실에서 3년가량 근무했던 적이 있다. 만성 신부전환자들은 매주 3~4번씩 방문해서 혈액을 몸밖으로 빼내 노폐물을 제거한다. 아픈 상태에서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 중 한 명이 간호사기 때문에 그들 옆에서 아픔에 공감해주고 가족처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환자를 대하는 기술이 서툰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민원이 들어올 때도 직접 나서서 해결한 경우가 많다. 외향적 성격 때문에 환자를 끌어안고 보듬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픈 환자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

-최근 엔데믹이 선언됐다. 코로나 시국에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다.

“2020년 1월 간호부장으로 발령 받고 나서 곧바로 코로나 사태가 찾아왔다. 간호부장으로 있으면서 코로나 관련 업무에 매진했기 때문에 별명이 코로나 간호부장이었다. 간호부장을 처음 맡았던 상황에서 코로나까지 터졌기 때문에 수시로 관련 회의와 검사를 진행하면서 정신없이 보냈다. 지역에서 집단 감염 사례가 나올 때마다 난리 났던 시절이라 전우애를 갖고 동료들과 함께 환자를 돌보는 데 최선을 다했다. 병원 내 간호사와 병동 보조사 등 직원 2명이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직원 1200명에 대한 검사가 진행됐던 순간도 있었다. 다행히 검사를 받은 모든 직원들이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 상황이 워낙 급박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는 2025년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에 집입할 전망이다. 만성질환이 증가하고 병원을 오가며 진료 받기 힘든 고령환자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비한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에게 감사하고, 저 역시 간호법 제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랫동안 직장생활하고 사회활동을 해오면서 인생에 공짜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열심히 한 만큼 좋은 결과와 보람된 감정이 따라오는 것이지 거저 얻는 것은 없다. 간호사로서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 대전시간호사회 회장으로서 간호사들을 위해 소명 의식을 갖고 처우 개선과 권익 향상에 힘쓸 것이다.”

김성준 기자 junea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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