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인생에서 무거움을 선택할 것인지, 가벼움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를 합니다. 무거움이란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는 사람을 말하는데, 단순한 일상생활도 철학적 사유를 담으려고 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벼움은 진지함이 부족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일시적이고 즉흥적으로 순간의 선택을 하므로 배울 점은 없으나 즐겁고 유쾌하기는 합니다. 인생은 가벼움이든 무거움이든 선택의 연속입니다. 작게는 아침에 어떤 옷을 입고 나갈 것인지...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도 이제 하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는 요즘이지만 실은 마음의 추위가 더 매섭습니다. 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 탓하기 바쁘고 이제는 여야의 대립뿐만 아니라 여여, 야야의 내부적 분열도 보기에 민망합니다. 정부는 경제의 완만한 상승세를 예측하고 있으나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수출부진의 영향으로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중국의 경제 불안과 미국의 금리인상 등 이른바 G2 리스크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G2 리스크에 따...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있다.”로 시작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불륜 여인의 자살’이라는 객관으로부터 촉발된 이 작품은 장장 1700여 페이지에 15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서사문학으로 변모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현 시대의 유럽 문학 가운데 어떤 작품도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고 극찬했을 만큼 당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10여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는 등,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릅니다. 또 영국의 시인 매튜 아놀드가 “사실 우리는 ‘...
지난주에는 여행문화센터 ‘산책’에서 주관하는 인문학콘서트에 참여해서 강연을 했습니다. 주제가 ‘소설속의 사랑’이여서 마음에 들었지만, 막상 강연을 하려니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고, 또 사랑의 모양이 요모조모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사랑이야기는 자칫 진부하고 식상하여 클리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나 철학자들은 ‘사랑’을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륜(不倫)이라고...
정부나 기업에서 혁신을 강조합니다. 대부분 ‘혁신’에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고 실행 방향이 탁 트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혁신과정을 논의하다보면 흔히 ‘더듬다’라는 단어가 연관어로 빈번히 나와 당황하게 됩니다. ‘더듬다’의 사전적 정의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 보며 찾다’입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문고리를 잡으려고 더듬거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혁신이란 문제와 결부시킬 때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러다보니 혁신을 거론할 때 계속 이 단어가 연관어로 나오는...
미국 아마존 비즈니스분야 최장기 베스트셀러였던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은 ‘꿈꾸고 사랑하고 열렬히 행하고 성공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참 멋있고 의미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면 위와 같은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받아왔고 이로 인해 ‘왜?’라는 목적의식은 생략된 채 ‘뭐가 되는’ 목표만 생각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우리에게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유명한 페터 비에리는 소설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정신 세계와 철학적 인식 등, 폭넓게 인문학 분야를 아우르는 저서들을 출판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은 ‘자기결정’과 ‘삶의 격’이 있습니다. 앞의 소설과 두 권의 철학서적을 관통하는 개념은 ‘자기결정’과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자기결정은 존엄성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인데, 어떤 상황에 휩쓸리거나 타인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삶의 변곡점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결정할 때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좌파와 우파의 갈등이 심합니다. 단순한 갈등이라기보다, 어느 한 입장을 자인한 사람들은 각자의 성을 쌓고 요새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는 국제적인 기준과는 좀 다릅니다. 알려진 바대로 좌·우파는 프랑스에서 연유된 것으로 1789년 혁명직후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았고 왼쪽에는 공화파가 앉았는데 그것이 각각 우파와 좌파의 기원입니다. 정치적으로 우파는 점진적, 보수적 정파를 뜻하고 좌파는 급진적, 혁신적 정파를 뜻합니다. ...
철학자 니체는 살아있는 동안 학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20세기 이후 지식인들은 니체가 프로이트나 마르크스와 함께 근대 철학을 뛰어 넘은 위대한 사상가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니체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니체의 말을 ‘곁에 두고 읽는 니체’라는 책으로 펴내면서 ‘20세기 철학계는 물론 문학·예술계까지 깊은 울림을 남겼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니체에게 삶을 배웠으며, 니체처럼 살고자 하는 철학자’를 자임하는 이진우 교수는 ‘니체의 ...
지난해에는 토마스 피케티 교수의 불평등을 다룬 ‘21세기 자본’이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라고 각광을 받더니 올해는 불평등 문제의 대가인 앵거스 디턴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바야흐로 불평등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일부에서는 불평등을 보는 디턴과 피케티의 견해를 대척점으로 보기도 하고, 오히려 상호 보완관계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물론 디턴 교수는 세계경제가 점점 더 평평해지고 있으며, 경제성장은 세계를 절대빈곤과 죽음으로부터 구해 낸 원동력이라 주장하는 점에서, 피케티 교수의 갈수록 불평등...
세계 최고로 인정을 받아 한국을 빛낸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예술과 스포츠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최근에는 두 분야가 아닌 UN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하여 한국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학술분야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기 때문에 실망을 주고 있지만, 노벨상과 관계없이, 저는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강상중 교수와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병철 교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재일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사람으로 최근까지 일본의 지방대 총장으로 근무한 바 있습니다. 일본에서 100만부가 ...
이번 월요아침편지를 쓰기 전, 몇 사람에게 ‘불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질문을 했더니 50대 남성은 ‘솔직하게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대답을 유보하였고, 어떤 30대 주부는 ‘불륜, 절대 해서는 안 되지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은 불륜이란 말 자체를 입에 담기조차 꺼려하는데,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가식으로 일관하는 것보다는 한번쯤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주 작은 일상에서도 자기 내면...
영국의 인구학자 폴 월리스는 고령화 사회에 가져올 충격을 지진(earth-quake)에 빗대어 ‘에이지 퀘이크(age-quake)’라고 표현했습니다. 2020년 무렵에는 세계 경제가 에이지 퀘이크로 큰 충격을 받을 것이며, 그 강도가 리히터 규모 9.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였습니다. 그는 한국도 피해를 크게 입을 국가 중 하나로 꼽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1.15로 세계 최저 출산국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출산율이 세계 최저이기에 인구 고령화 속도역시 세계 최고이며, 2018년에는 노인 인구비율이 14...
지금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인문학 전공을 통합하거나 폐과하는 등 인문학의 고사가 진행 중인데,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열풍이 부는 모순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칫 ‘힐링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정진홍 교수도 인문학이 흥행의 대상 혹은 유행의 첨병이 되는 것에 대해 역시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 인기강사 최진기 씨도 인문까지도 자본의 ‘주구’가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분들이 ...
최근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하였습니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 행위에 많은 국민들이 불안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 어려운 고비는 상존하고 있으나 얼마 전 남북고위급 접촉에서 6개항에 대한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어 일단 안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북회담이나 접촉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입북하여 김일성과 면담을 하였고, 당시 제 2인자인 김영주와 합의문에 공동서명을 하는 성과를 낸 것을 필두로, 1991...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은 ‘상위 1%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미 만인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공유할 수 없는 사회라고 규정한 것이지요. 이런 미국사회의 불평등의 단면은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은 더욱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그 수가 더욱 많아지며,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등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장의 힘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국의 미래를 두 가지 방향으로 예측...
일주일 전에 처서가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가을입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나, 하늘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미 몸은 마음보다 먼저 가을을 느낍니다. 가을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고독하다, 외롭다, 쓸쓸하다’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것 같은 이 표현들을 좀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각기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고독은 홀로 있다는 점에서는 외로움과 같으나 능동적으로 홀로 있는 것이고, 외로움은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공허한 감정을 일컫습니다. 쓸쓸하다는 감정은 고독과 외로움과 비슷하지만 예를 들어 ‘겨울 들판’을 표...
저는 매일 새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는 제 ‘공부방’ 근처인 ‘시청 앞 가로수길’을 자주 걷고, 주말이면 집 근처인 유등천을 따라 걷곤 합니다. 새벽운동은 동네 헬스클럽에서 하는데 건강을 위해 의무적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라 마음의 여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청 앞 가로수길과 유등천을 걸을 때는 전혀 느낌이 다르지요. 계절마다 빛깔과 모양이 다른 나무와 꽃 그리고 강물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산책은 굳이 건강과 연결할 필요도 없고, 시간의 제한을 받을 필요도 없으며 뚜렷한 목표를 세울 이유도 없습니다. ...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입추와 말복, 그리고 본격적인 휴가철도 지났으니 이제 가을로 접어들겠지요. 절기로는 입추(8월 8일)에서 입동(11월 7일)까지가 가을이라고 하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무더웠고 늦더위도 있을 듯합니다. 가을은 역시 독서의 계절이지요. 책 읽기에 날씨도 적당하고 쓸쓸한 가을의 감성도 독서에 빠져들게 만들지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문고전과 독서를 권장하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저는 이지성씨를 인문학과 독서법의 전도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동안 펴낸 ‘리딩으로 리드하라’, ‘독서 천재가 된 ...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은 지금부터 32년 전에 처음 출판된 이래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지난해 4판까지 인쇄를 했다고 합니다. 책머리에 밝힌 작가의 표현대로 ‘잘못된 권력을 야유할 속셈으로’ 집필했다는 ‘완장’이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완장 문화’가 존재한다는 방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흥길의 ‘완장’은 풍자성이 강한 전라도 사투리와 질펀한 입담으로 해학성을 잘 살린 장편소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설속의 주인공 임종술은 ‘어려서부터 대처(도회지)로만 떠돌면서 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