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26>
배재대 석좌교수

세계 최고로 인정을 받아 한국을 빛낸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예술과 스포츠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최근에는 두 분야가 아닌 UN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하여 한국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학술분야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기 때문에 실망을 주고 있지만, 노벨상과 관계없이, 저는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강상중 교수와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병철 교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재일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사람으로 최근까지 일본의 지방대 총장으로 근무한 바 있습니다. 일본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린 ‘고민하는 힘’을 비롯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 소설 ‘마음’등 10여권의 저서를 남겼고, 일본 방송사 메인 뉴스의 해설자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병철 교수는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피로사회’를 비롯하여 ‘투명사회’, 최근에 출간한 ‘에로스의 종말’ 등의 저작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문화비평가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정치학이 전공이고 한병철 교수는 철학이 전공이나 두 사람 모두 성과주의에 내몰려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으며, 일본과 독일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사회를 정확하게 조명하고 있다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일본이나 한국의 삶의 방식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를 지향하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활기를 띠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희망도 전망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특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한국의 세월호 참사 이후 일본의 풍요로움과 한국의 경제발전이 과연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모두 1인당 국민소득은 높지만 정작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재의 삶이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 가족관계에서의 문제들, 사회모순에 이르기까지 전례없는 불안을 안고 살고 있으며, 특히 젊은이들의 불안감이 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병철 교수도 무한경쟁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을 잘 경영해서 절대적 손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사랑에 습격 당하지 않은 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그래서 “사랑도 사유도 가고, 우울한 나르시시스트만 남아있다.”고 일갈합니다. 특히 ‘피로사회’와 ‘심리정치’라는 저서를 통해 현대사회는 성과사회의 명령 아래 자기 착취에 중독된 현대인의 모습과,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신자유주의 질서에 통치당하는 욕망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타인은 사라지고 자신에게만 극단적으로 집중하게 되어 오히려 자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지요.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도 유사합니다. 강상중 교수는 사랑이란 에고이즘이며 소모품이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순애가 있고 그 극단에 즉물(卽物)적 섹스가 있으며 그 중간에 소모품 같은 사랑이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은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한병철 교수도 현대사회에 진정한 사랑은 이미 종말 했다고 선언하면서, 현대를, 사랑대신 우울증이 만연한 사회라고 규정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도 잘 정리된 업무와 성과를 보장하는 프로젝트처럼 진행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랑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즐기기만 하는 두 사람 사이의 가벼운 계약이 아니라 타자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 경험이라는 것이 한병철 교수의 견해입니다. 현대를 비판적으로 진단하면서도 두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고민’과 ‘종말’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수호와 재발명’이며 ‘사유를 통한 자유’와 ‘절망 속의 희망’을 찾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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