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25>
배재대 석좌교수

이번 월요아침편지를 쓰기 전, 몇 사람에게 ‘불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질문을 했더니 50대 남성은 ‘솔직하게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대답을 유보하였고, 어떤 30대 주부는 ‘불륜, 절대 해서는 안 되지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은 불륜이란 말 자체를 입에 담기조차 꺼려하는데,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가식으로 일관하는 것보다는 한번쯤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주 작은 일상에서도 자기 내면의 욕구에 충실하려는 욕망과 남에게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하려는 규범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서울대 김두식 교수는 ‘욕망(色)과 규범(戒)이 충돌하는 것’이라고 요약 설명하고 있지요.

불륜은 가장 큰 죄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생활 및 주거 기반은 배우자에게 의존하고, 정서적 또는 육체적인 부분은 내연남(여)과 공유하는 이기심이며, 결혼제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회적 일탈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알랭 드 보통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성적, 감정적인 모든 욕구를 평생 해결해 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도덕주의적 결혼 습관을 비판합니다.

문학작품에도 종종 불륜이 등장합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가진 남편을 배반하고 잘생긴 청년 장교를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지는 안나의 불륜행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랑과 집착, 의심과 갈등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불행은 불륜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를 해설한 박웅현 씨는 ‘안나의 바람기는(내가 갖지 않은) 다른 생에 대한 동경’이었다고 설명하고 다른 세계, 다른 가능성, 다른 즐거움, 다른 쾌락에 대한 문을 닫는 게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닌가, 반문하면서 불륜의 심층적 심리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불륜이 주제가 된 또 하나의 소설은 프랑스 작가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오래’입니다. 보통 불륜은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일시적 감정, 혹은 성적관계가 반복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기 쉬운데 ‘오래오래’에 나오는 두 남녀는 정상적인 부부보다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이 작품을 해설한 강신주 씨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지만, 아내나 남편은 서로에게 배우자일 뿐 결코 애인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혼외의 사랑은 결혼생활과는 달리 ‘범상함을 초월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도덕과 규범이라는 틀 안에 숨어있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불륜은 미묘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독한 혼란’을 주면서도 ‘너무나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아름답고 신성한 것으로 떠올리지만 막상 사랑을 쟁취하고 결혼과 같은 형태로 구체화되면 그 순간 땅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이러한 현상을 재일동포 학자 강상중 교수는 ‘쓰다 버린, 그래서 차갑고 딱딱해진 것처럼 변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랑은 에고이즘이며 소모품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불륜예찬’이라는 책의 저자, 프란츠 요제프 베츠는 사랑이란, 호르몬에 의한 화학반응이라고 단언을 했고, 세익스피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미친 사람은 둘 다 뇌가 흥분한 상태다.’라고 했듯이 이성적 행위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 원천적 모순과 혼란을 안은 채 사랑과 결혼은 자신의 책임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피나는 자기절제와 냉정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제력이 없다면 공공생활은 끔찍한 혼란에 빠질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혼란보다는 교양을 갖춘 문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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