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18>
배재대 석좌교수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입추와 말복, 그리고 본격적인 휴가철도 지났으니 이제 가을로 접어들겠지요. 절기로는 입추(8월 8일)에서 입동(11월 7일)까지가 가을이라고 하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무더웠고 늦더위도 있을 듯합니다. 가을은 역시 독서의 계절이지요. 책 읽기에 날씨도 적당하고 쓸쓸한 가을의 감성도 독서에 빠져들게 만들지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문고전과 독서를 권장하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저는 이지성씨를 인문학과 독서법의 전도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동안 펴낸 ‘리딩으로 리드하라’,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생각하는 인문학’ 등을 비롯한 여러 책에서 동서양 천재들의 인문고전을 체계적으로 해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재들의 사색·독서·공부법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소개한 수많은 사례 중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에 관심이 갑니다. 두 사람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천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3살이 되도록 말을 못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지적장애인 수준이었고, 중학생 때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으며, 산만하고 수업태도가 나빴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퇴학을 당하였고 대학입시에서는 낙방한 경험이 있었으며 별 볼일 없는 대학생활을 하였고 박사학위는 중도에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문고전을 열렬히 사랑하여 13세 때 유클리트의 ‘기하학’, 14세 때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읽었다고 합니다. 17세 때는 ‘나는 평생 술 대신 인문학에 취하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선언을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인슈타인의 삶은 인문고전으로 채워져서 이미 10대에 대부분의 서양철학 고전을 독파하였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전공보다는 철학고전 강의를 즐겨들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25세 때 ‘특수상대성 이론’, ‘광전자 효과’,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특기할 것은 당시 아인슈타인의 직업은 교수가 아니라 특허사무소의 말단 직원이었습니다.

천재의 대명사격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분명 천재였지만 인문고전을 읽기 전까지 그의 천재성은 드문드문 나타내었을 뿐인데, 인문고전 독서에 몰입하자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14세 때 유명 미술가 작업장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아 10여 년간 조수로 근무했으나 30세 때에는 실패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피렌체 정부는 교황으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할 예술가들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으나 그는 거기에서 탈락하여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렸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36세가 되어서야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67세까지 비교적 오래 살았지만 당시 유럽인의 평균 수명은 30~38세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당히 늦게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셈입니다. 당시, 10대 초반 아이들이 했던 라틴어 어형 변화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초인적인 의지로 문학, 철학, 역사 고전을 읽으면서 천재성이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회화와 조각은 물론이고 광학, 해부학, 식물학, 건축한, 지리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적 업적을 이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학습부진아였던 아인슈타인과 인생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통해서 후천적인 노력으로 천재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사실 토머스 에디슨도 초등학교 입학 3개월 만에 퇴교를 했지만 인류 최고의 발명가가 되었지요. 그가 남긴 ‘천재는 99퍼센트가 땀이며 1퍼센트가 영감이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인문고전을 열심히 읽는다한들 모두가 천재나 위인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와 같은 범부들은 그저 오는 가을, 여유롭고 자유로운 독서가임을 자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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