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외수를 보면 ‘앙상한’ 겨울이 연상될 정도로 말라깽이다. 그는 청년시절 자신의 몸을 모질게 연소시켰다. 됫병 소주 2개를 들이켰고, 담배는 하루 예닐곱 갑씩 태웠다. 3일 정도는 우습게 굶었고, 라면 한 개로도 일주일을 버텼다. 1970년대 이외수의 퀴퀴한 자...
▶스승은 냉온류(冷溫流)였다. 온탕이거나 냉탕이거나. 혹은 존엄하거나 엄하거나. 제자의 딱한 처지를 본 선생은 셋방에 살면서도 공납금을 대신 내주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학생에겐 자신의 도시락을 내밀고, 사랑의 매를 들었다가도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울었다. 한편으...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탄화된 볍씨 59톨이 발견됐다. 이 볍씨는 1만 5000년 전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로 공인받았다. 때문에 기원전 2000년께 중국에서 벼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가설도 바뀌었다. 한민족이 벼농사를 지은 지 3000년은 너끈히 ...
▶“어머니, 저는 사쿠라 잎이 산화하듯 스러질 것이며, 일본 왕을 위해 꽃처럼 웃으며 죽겠습니다.” 군국주의 광풍 속에 죽어간 일본인들의 처절한 이별가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포로가 돼 수모를 겪지 말고 사무라이답게 자살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실제로 이 명령에...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엽록소 잔뜩 머금은 초록을 꿈꾸며 가지에 매달리고 싶어도 때가 되면 낙엽이 된다. 그러나 낙엽은 주검이 아니다. 봄과 여름이 바람과 햇빛으로 살갗을 태우고 추해지기 전에 자신을 버리는 성스러운 의식(儀式)이...
▶당나라 양귀비는 촉주사호(蜀州司戶) 양현염의 딸로 본명은 양옥환이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으로 수왕과 현종에게 총애를 받았다. 양귀비는 글래머였는데 항간에선 ‘하얀 돼지’라 불렸을 정도로 살집이 많았다. 또한 미용(美容)을 위해 말을 타고도 한두 달 걸리는 남...
▶요즘도 일부에서는 대통령을 ‘각하(閣下)’라 부른다. 물론 공식 호칭은 ‘대통령님’이고 사석에서는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을 딴 ‘MB’나 VIP로 불린다. ‘각하’는 원래 ‘전각(殿閣) 아래서 뵙는다’라는 뜻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과거엔 국무총리,...
▶아줌마 손에는 시금털털한 김치냄새가 배어있다. 흥정의 달인으로 물건값 깎는데도 도사다. 바겐세일이라도 있으면 밤을 꼬박 새워 마트 앞에 제일 먼저 줄을 선다. 몸뻬(일바지)를 입고도 당당하고, 벤치에 앉아 젖을 물려도 당당하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이다....
▶촛불=미국산 쇠고기를 마구잡이로 가져오려 하자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무동 탄 아이들, 여중생, 유모차 부대, 하이힐 신은 처녀, 지팡이 짚은 노인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MB정부의 비정(秕政)을 개탄하는 촛불은 그렇게 점화됐다. 그 촛불은 안전한 식탁주권을 찾기 위한...
▶세종은 덕이 높고 높아 ‘해동의 요순(堯舜)’이라 불렸다. 요순시대란 최고의 정치 부흥기를 뜻한다. 32년 재위기간에 보여준 실용적 애민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단순히 한글을 창제하고 용비어천가를 지은 언어지도자에 그치지 않았다. 육진...
▶산 너머에 보름달이 휘영청 걸렸다. 바람은 고요를 차고 고향 뜰 멍석을 배회한다. 노랗게 익은 달무리는 햇곡식과 햇과일을 넉넉하게 비추고, 마을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밤(乙夜)까지 흥타령에 젖는다. 옛날에는 보름 전 3일 동안 반달일 때보다 달빛이 12배 정도 강...
▶정치적 거짓말의 역사는 40년에 가깝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서 시작된 ‘거짓말’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노태우 씨는 대선 때 약속한 ‘중간평� ?� 하지 않았고, 김영삼(YS) 씨는 3당 통합 때 합의한 내각제개헌을 까먹었다.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던 전두환·...
▶왜 가난하면 ‘X구멍’이 찢어지는가. X구멍은 눈물과 콧물을 배설하는 통로가 아니라, 가난과 부자의 끼니가 ‘양극화’를 거쳐 빠지는 수채통이기 때문이다. 쌀이 없어 시래기나 거친 풀을 많이 먹으니 찢어지는 것이다. 풀떼기와 한숨으로 버무린 피죽이기에 피가 나는 것이다...
▶일본 총선은 변화의 물결로 가득했다. 여성 54명이 당선되는 신기록을 세웠고, 세습 정치인들이 대거 몰락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여당의 거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발탁된 ‘미녀 자객’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초선의원이 전체 480석 중 158석이나 되고, 중의원 의석의 45...
▶1895년 10월 8일 경복궁에 살기 가득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일본 낭인(浪人)들이 명성왕후를 시해하기 위해 서슬을 치켜든 것이다. 가담자 중엔 하버드대, 도쿄대를 졸업한 엘리트도 있었고, 훗날 일본 장관, 10선 국회의원, 외국 대사를 지낸 인물도 있었다. 여기...
▶삼국사기를 쓴 고려 문신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는 신라중심의 사관(史觀)이 고리타분하게 박혀있다. 사기에는 고구려의 멸망이 수·당나라에 대한 불순한 태도 때문이라며 중국 역성을 든다. 또한 백제가 전쟁을 일삼고 대국에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지었...
▶1969년 7월 21일 새벽 미국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구촌 7억 명의 시청자는 순간 심장이 멎었다. 꿈에서나 본 듯한 ‘옥토끼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우주선장 닐 암스트롱은 직경 100m 정도의 분화구 곁에 착륙선을 내...
▶클린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집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아닌 평범한 ‘미국 국민’으로 특사임무를 수행했다. 아내 힐러리도 막후에서 남편을 지원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에 도전했던 클린턴은 유권자의 표...
▶밥만 먹고 어떻게 사는가. ‘밥’만을 위해서 어떻게 사는가. 때로는 진눈깨비 같은 여행길에 소나기도 맞고, 그럴싸한 레스토랑에 앉아 ‘칼질’도 해야 하지 않는가. 탕탕한 세상길에 말동무라도 만들어 질탕하게 마셔 봐야 하지 않는가. 별빛도 차가운 유곽 같은 방안에 처박...
▶광장은 소통의 장소다. ‘어울림’이 춤추는 대의정치의 표상이다. 2002월드컵에서 보았듯이 광장은 다수를 리드미컬한 공동체로 만든다. 같은 밥을 먹지 않았어도,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하나가 되는 통로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똑같이 굿판을 벌이는 드넓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