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읍 산척리 일원 기념관 준공
7개 언어 구사하는 등 뛰어난 인재
AR·홀로그램 등 기술로 삶 재조명
기관·사회단체 모금 활용 건립 눈길

[충청투데이 이용민 기자] 3·1절 함성이 울리기 전에도 빼앗긴 봄을 찾기 위한 소리없는 아우성이 있었다.

3월 31일(양력)은 충북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1870~1917) 선생의 순국일이다. 그는 만세운동 2년전인 1917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숨을 거뒀다.

진천군은 이를 기리기 위해 오는 3월 31일 이상설 선생의 기념관 준공식을 갖고 기념 행사로 기념관 진입로에 무궁화 331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진천읍 산척리 9830㎡ 터에 지상 1층, 지하 1층(연면적 1508㎡) 규모로 지어진 이 기념관은 전시관과 강당 겸 교육관 등을 갖췄다. 국비와 지방비, 성금 등 102억 3500만원이 투입됐다. 군은 이곳에 선생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상설 선생은 율곡을 이을 대학자라 불릴 만큼 뛰어난 인재였다. 재성이 절륜하고 동서학문에 두루 능했고 영어, 프랑스어 등 7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과(과거)에 급제했지만 곧 나라가 망했고 구한말부터 1910년대 만주와 연해주 독립운동에 힘썼지만 일본과 러시아 등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참석하도록 고종 황제가 보낸 특사의 대표였지만 일본의 방해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48세에 머나먼 타국 땅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당시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기념관은 불꽃같은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AR·VR, 홀로그램 등 최첨단 실감형 전시기법과 인공지능 대화시스템은 당시 현장에 선생과 함께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제공하며 단순히 ‘헤이그 특사’로서가 아니라 학문의 탁월함, 관료로서 구국운동, 독립을 위한 교육자로서의 삶, 해외 독립운동의 발판 마련 등 선생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는 장소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상설 기념관은 어린이부터 경로당 어르신, 기업, 기관·사회단체 등 각계의 관심과 모금으로 건립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현재까지 걷힌 모금이 13억 3000여만원에 이른다.

이상설 기념관 추진위원장인 장주식 진천문화원장은 "이상설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선생의 훌륭함을 다시 알게 됐다. 그동안에는 선생의 큰 업적에 비해서 평가가 제대로 되지도 않고 역사 속에서 좀 가려져 있는 측면이 있었다. 이제 기념관을 중심으로 업적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진천이 독립정신의 수도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군은 기념관 준공식을 계기로 보재 선생의 서훈등급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하기 위한 국민청원, 범군민운동 등을 검토 중이다.

진천=이용민 기자 lympu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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