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국회의원

정부가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예고됐던 대로 R&D 예산은 약 5.2조원라는 예산이 삭감됐다. 전년대비 16.6% 감소한 수치다. 긴축재정 기조 속에서도 다른 예산은 대부분 증액된 반면, R&D 분야만 날벼락을 맞았다. 올해 초부터 절차대로 차근차근 심의됐던 R&D 예산안이 대통령의 ‘카르텔’ 한마디에 휴지 조각이 된 이후, 약 두 달간 진행된 깜깜이 졸속 심의 속에서 난도질당한 결과물이다.

예산 삭감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다. 25개 기관 평균 13% 이상 예산이 삭감됐는데, 주요사업비는 평균적으로 25% 이상 삭감됐다. 주요사업비는 각 연구기관이 연구를 위해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비용이다. 사업비가 대폭 삭감되면서 출연연은 기존 연구 과제를 축소하는 것은 물론 신규 과제도 모두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번 예산 삭감에는 제대로 된 기준도, 명쾌한 사유도 없다. 갑작스런 예산 삭감으로 연구 현장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다. 언론에 여러 번 보도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셧다운 사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KISTI는 전기료 절약을 위해 슈퍼컴퓨터 5호기와 연결된 클러스터 장비 48%의 전원을 내렸다. KISTI 출범 이후 6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KISTI 내년도 예산도 16% 이상 삭감된 만큼 내년에는 더 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운영상의 애로사항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R&D 예산 삭감으로 우려되는 부작용과 후유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연구자의 사기 저하다. 정부가 직접 세금을 들여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이유는 민간에 맡겨두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연구를 정부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다. 그야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인 것이다. 대한민국을 정보통신강국으로 만든 CDMA 기술부터 우리나라를 7대 우주 강국으로 만들어 준 누리호 발사 기술까지 모두 출연연 연구자의 피땀어린 노력이었다. 졸지에 부정부패의 주범으로 몰린 연구자들에게서 앞으로 이런 성과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까?

연구자의 사기 저하로 유능한 인재들의 해외 유출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안 그래도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과학기술계는 미래 인재 육성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유능한 연구자가 떠난 연구 현장에서 국가 경쟁력을 이끌 획기적인 기술이 탄생할리 만무하다. 전 세계가 기술 패권 경쟁에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작금의 선택은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 만드는 최악의 결정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는 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출연연이 수행하는 각종 연구 과제는 지역 대학 및 기업과 연계하여 진행되는 것이 많다. 연구에 필요한 각종 장비 수요도 급감할 것이다. 이번 R&D 예산 삭감 사태로 연구현장은 물론, 지역 경제, 국가경쟁력 모두 악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 중심에 두겠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약속과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이제 국회 심의라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필자는 작금의 R&D 예산 삭감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국회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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