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김중곤 기자] 가끔 돈의 단위에 무감각해질 때가 있다.

‘국비 10조원 충남을 만들겠다’, ‘2045년까지 51조원을 투입해 탄소중립경제를 실현하겠다’ 등의 기사를 쓰다 보면 살면서 만져보기 어려운 이 돈이 실제 얼마나 큰지 잊는 것이다.

올초 ‘허베이 유류피해기금 3067억원’을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였음을 고백한다. 이 돈은 2007년 12월 태안기름유출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이 책임을 인정하고 2018년 사회복지공공모금회에 기탁한 피해지역 발전기금이다. 이후 모금회는 피해민단체인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이하 허베이조합)에 2024억원, 서해안연합회에 1043억원씩 배분했다.

허베이 유류피해기금을 취재한 이유는 두 단체가 막대한 금액의 3067억원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베이조합은 2019~2028년이 사업기간인데 지난해까지 2024억원 중 11%에 불과한 226억원만 집행했다. 서해안연합회는 올해 사업이 끝나는데 원금은 손대지 않고 이자만 사용했다. 단체 내 이권 다툼, 운영 미숙 등 각종 이유로 기금이 정상적으로 집행되지 않으면서 기름 유출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피해민을 또 한 번 아프게 한 것이다.

보도를 집중적으로 이은 지난 4~5월, 기자로서 시선은 기금 사태를 일으킨 단체와 이들을 방관한 감독기관에 집중돼 있었다.

잘못된 관점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피해민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3067억원이 얼마나 큰돈인지에 대해선 깊게 인식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3067억원이 제대로 투입됐다면 피해민이 아픔을 딛고 지역이 발전하는 기회를 맞았을 텐데 말이다.

오는 9~10월 공주와 부여에서 열리는 대백제전의 예산은 180억원이다.

도민의 염원이라는 서산공항 건설 사업비는 50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서해안권의 취약한 의료 인프라를 해결한 내포 종합병원 설립을 위해 충남도가 병원사업자에게 지원할 수 있는 비용은 최대 1000억원 안팎이다.

3067억원은 세계적 행사를 여러 차례 열고, 지역의 교통망을 확충하며 시급한 큰 병원도 짓는데 부족함이 없는 돈이다.

모금회는 지난 4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허베이조합과 서해안연합회에 배분한 기금 전액을 환수하기로 결정했다.

환수한 기금이 피해민을 위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새 사업 체계를 다시 만든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제는 3067억원이 피해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지역이 성장하는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