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원우 前 부석사 주지스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석사 존재
추가된 사찰 뜻하는 ‘신증’ 안 붙어
고려부터 있었던 사찰이라는 의미
시효취득 선의적·자주적 점유여야
관음사에 있는건 약탈이라 악의적
반면 항소심 재판부 시효취득 인정
약탈문화재 돌려놓을 당위성 높여
대법원에 공정한 판단 요청 할 것
무엇이 정의인지 냉철히 판단하길

▲ 원우 전 부석사 주지스님. 김중곤 기자
▲ 충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문화유산회복재단 제공
[충청투데이 김중곤 기자] 수백년 전 약탈됐던 문화재가 또 한 번의 절도로 다시 국내에 들어왔다면, 어디에 소유권을 인정해야 할까. 복잡한 물음의 대상이 되는 문화재는 충남 서산 부석사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이하 불상)이다. 이 불상은 왜구의 고려 침탈로 일본 대마도 관음사로 넘어갔다가 2012년 국내 절도단에 의해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부석사는 문화재를 최초 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뜻에서 2016년 법적 공방에 뛰어들었다. 1심에선 승소했지만 2심에서 뒤집혔고, 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겨두고 있다. 부석사는 불상 소유권 재판이 앞으로 한국처럼 문화재 약탈 피해를 입었던 수많은 국가가 ‘문화 주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힘의 논리가 아닌,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사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힘주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충청투데이는 24일 원우 전 부석사 주지스님을 만나 불상 재판 전반에 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유체동산인도 청구 소송의 진행 상황을 설명해달라.

"2012년 국내 절도단에 의해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있던 해당 불상이 국내에 반입됐다. 이 불상은 1330년대 고려 충선왕 즉위에 맞춰 부석사에 봉안된 불상으로, 왜구의 고려 침탈 당시 일본으로 넘어갔다. 부석사는 2016년 4월 유체동산인도 청구소송을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했고 이듬해 1월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피고 검찰의 불복으로 지난달 열린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불상은 결연문을 통해 확인되듯 명백한 부석사 소유다. 이에 2심 판결에 상고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부석사 불상 반환 청구 소송을 단일 사건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약탈문화재가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문화재를 빼앗는 것이 당연시 됐고, 한국은 대표적인 피해 국가다. 주변의 동남아시아, 멀리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피해 국가들은 힘의 논리에 의해 대처를 잘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을 딛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다. 한국이 약탈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모범이 돼야 한다. 부석사 불상을 원래 위치에 봉안하는 일은 피해국 모두의 문제이고, 문화재 약탈은 어떠한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금의 부석사와 불상을 봉안했던 고려시대 부석사가 다르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례를 부정한 판결이다. 한국은 삼국시대 때부터 전란을 많이 겪어 불타고 훼손된 절이 많다. 그래서 한국전쟁 때 전소됐다가 1964년 복원된 오대산 월정사에서 매장 문화재가 나왔을 때 법원은 문화재청이 아닌 월정사에 그 문화재의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했다. 새로 지었어도 사찰의 역사와 연속성을 인정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조선왕조실록에 부석사라는 명칭의 자복사(지방의 복을 비는 절)가 없다는 이유로 고려 부석사가 폐사하고 이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사찰이 새로 생겼다고 봤다. 하지만 자복사 명단에 빠진 것은 경주 불국사도 마찬가지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부석사가 없다고 하는데 대신 이를 보완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있다. 심지어 추가된 사찰이라는 의미의 ‘신증’이 부석사에 붙어 있지 않다. 즉 원래부터 있었던 사찰이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명백한 역사적 사실 왜곡이다."

-항소심에서는 일본 관음사가 불상의 점유권을 시효취득 했다는 재판부 판단도 나왔다.

"시효취득은 선의적이고 자주적인 점유여야만 가능하다. 불상이 관음사에 있는 것은 왜구의 약탈 때문이니 악의적 점유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항소심 재판부는 관음사의 불상 시효취득을 인정했다. 지금의 관음사를 약탈 당시의 관음사와 무관한 서로 다른 사찰로 봤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음사는 1953년 세워진 절이라는 것인데, 당시는 일본에서 종교단체 재등록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겪은 이후 종교 재정비를 한 것이니 새 사찰의 창건이 아닌 ‘계승’으로 보는 것이 맞다. 재판부가 이중 잣대를 내세우고 있다. 부석사는 고려시대 건물이 남아 있지 않으니 별도의 사찰이라면서, 관음사는 건물도 같고 재등록 이후에도 주지가 동일했는데 다른 사찰이라고 하니 말이다."

-항소심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결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법리가 아닌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법 전문가인 사람들이 일시적 소실 또는 폐사 후 복원하면 동일성을 인정한다는 기존 판례를 몰랐을 리 없다고 본다. 부석사는 전 세계의 약탈문화재를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법에 묻고 있다. 재판부에 정치적 판단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부석사 불상의 경우처럼 절도로 약탈됐던 문화재를 되찾은 사례가 있나.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달력인 ‘오뱅 토날라마틀(Aubin Tonalamarl)’이 매우 유사하다. 이 달력은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열강에 약탈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었다. 1982년 멕시코의 한 변호사가 이를 훔쳐 자국에 기증했다. 국내 절도단이 대마도 관음사에서 훔쳐 국내에 반입한 부석사 불상처럼 말이다. 절도 직후 프랑스는 멕시코에 반환을 요청했지만, 달력이 약탈문화재라는 점을 이해하면서 태도를 바꿨다. 2009년 멕시코와 ‘영구임대’ 협정을 체결하며 사실상 반환한 것이다."

-민사 소송이 아닌 국제법에 따른 문화재 반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은 유네스코 협약 등을 적용받지 않는다. 협약을 이행하려면 유네스코에 먼저 가입해야 하고 협약에 맞는 국내법도 제정해야 한다. 대표적인 문화재 약탈국인 일본에는 이같은 제반이 갖춰 있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문화재 약탈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양 국가의 협상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국 정부의 외교력을 볼 때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협상 능력이 발휘돼 확인된 적이 없다. 일본의 국보인 동조여래입상을 한국은 2015년 반환했다. 약탈문화재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 것인데, 부석사 불상도 빼앗긴 문화재다. 그때 협상을 통해 얻어냈어야 하는 부분이다. 굉장히 안타까운 심정이다. 외교적으로 풀었다면 법적 공방도 없었을 것이다."

-대법원 최종심이 있기까지 공론화가 중요해 보인다.

"우선 지난 1일 재판부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이후 추가로 확인한 사실을 정리해 이달 중 보충 서면으로 제출할 계획이다. 공론화를 위해서는 국회와 충남도의회, 서산시의회에 결의안 채택을 제안했다. 약탈문화재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높이고, 대법원에 공정한 판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정치적인 힘의 논리에 밀려 약탈국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무엇이 정의이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중곤 기자 kgon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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