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추석하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무엇일까. 송편, 성묘, 차례, 민족의 대이동 등등 많다. 많고 많음 중에 으뜸은 단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속담이 아닐까. 우리말이니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가윗날(추석)처럼 잘 먹고 잘 놀고 잘 입고만 싶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다. 아주 좋은 덕담 같기도 하다. 이 속담은 조선 선조 때 한양의 세시풍속 80여종을 월별로 구분해 해당 절후와 그에 따른 풍속을 설명한 김매순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처음 기록되어 전해진다. 이 책의 '음력 8월 중추(...
귀성(歸省). 부모를 뵙기 위해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뜻한다. 이 뜻대로라면 귀향(歸鄕)이라는 말이 더 옳지 않을까. '돌아가다'의 '歸'와 '살피다'의 '省'이 합쳐진 말이다. '歸'는 이해가 가지만 '省'은 다소 생뚱맞지 않은가, 도대체 돌아와 뭘 살피겠다는 것인가. 여하튼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연은 이렇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식 신교육이 보급됐다. 유교식 교육이 뒤로 밀리면서 많은 농촌 학생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신교육이 시작된 서울로 몰려들었다. 서울로 유학(留學)온 학생들은 방학이 되...
무데뽀. 생각 없이, 무례하게 마구 덤벼드는 행동을 말한다. ‘조선군 의병들은 일본에게 무데뽀로 덤비다가 참패를 당했지’, ‘무데뽀로 날뛰는 놈에겐 몽둥이가 약이지’. 무데뽀는 구어체로 흔히 사용되지만 일단 우리말이 아니다. 허나 우리가 만든 말이다. 일본식 한자어 무철포(無鐵砲)의 소리글자다. '철포가 없다'는 뜻이다. 철포라고? 1572년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게 명나라를 정복하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조선을 침공한 전쟁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새를 쏘아 맞혀서 떨어뜨릴...
아이러니.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와 반대되는 뜻을 의미한다. 또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뜻한다. 우리 말이 아니다. 유래는 아주 먼 옛날 그리스 희극에서 찾을 수 있다. '역설적인'으로 번역되나 원래 의미를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그냥 '아이러니'라 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도 지지리 못했던 학생이 교사가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영어로 'Irony’, 그리스어로 ‘ironeia’다. 이 ‘ironeia’는 그리스 희극의 등장인물, 에이런(Eiron)에서 비롯됐다. 이 에이런의 말과 행동...
짐작.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림을 뜻한다.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 짐작이나 했겠냐?', '짐작컨대 그는 이미 산으로 떠났을 거야'. 정보나 지식 등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 정신적 행위다. 자주 붙어 다니는 기생어가 있다. '어림과 지레'다. 어림은 '자세하지 않은', 지레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또는 어떤 기회나 때가 무르익기 전에 미리' 란 뜻이다. 이런 '짐작'이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믿겠는가. 한자어로 '짐작(斟酌)'이다.'짐(斟)'은 '술잔을 주고받다'이고, '작(酌)'은 '술을 따르다'이다....
이름.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개념 등을 가리키거나 부르는 의미기능이다. 집합을 통틀어 나타내거나 특정한 문맥 안에서 완전히 유일한 물건이나 개념을 나타낸다. '말을 하거나 전하다'의 뜻인 '이르다'의 명사형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먼저 이름을 짓는다. 동식물도 새로이 발견되거나 만들어지면 반드시 '학명(學名)'이란 이름을 얻는다. 이미 이름을 가진 사람이나 동식물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이름 없는 동식물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그 이름이 의사소통을 해야 의미를 가진다. 인간과 인간은 서로 이름을 불러 소통을 한다. 인간...
삼수갑산(三水甲山). 반드시 동사 '가다'와 함께 쓰여 '멀고 험한 곳으로 가다',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는 뜻이다.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너를 그냥 보내지 않겠다". 삼수갑산이 도대체 어디 길래 목숨을 걸고라도 반드시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가. 일단 물이 있고 산이 있는 것을 보면 무척 험한 계곡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삼수는 함경남도 북서쪽 압록강 지류에, 갑산은 함남 북동쪽 개마고원의 중심부에 있는 마을이다. 삼수는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하 18℃ 안팎으로 국내에서 가장 춥다. 갑산은 바...
밀월. 결혼 직후 즐겁고 달콤한 한달여 동안의 기간을 의미한다. ‘결혼식을 마치기 무섭게 그들은 밀월을 즐기기 위해 몰디브 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은 밀월 기간이라 서로 사랑 이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거야’. 꿀(蜜)과 달(月)이 합쳐진 단어다. '꿀처럼 행복한 한 달'이란 뜻이다. 꿀과 달. 어떤 관계가 있길래 한 몸이 되어 이런 뜻을 만들었을까. 스칸디나비아의 결혼 풍습에서 유래됐다. 스칸디나비아 신혼부부는 한달 동안 꿀이 첨가된 맥주를 마신다. '미드(mead)'라 하는 이 꿀 술은 여자 부모가 빚었다. 건강한 ...
스팸. 첫 째는 '다진 고기로 만든 통조림'이다. '불판에 살짝 구워먹는 햄' 말이다. 두 번째는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대량 살포된 광고성 e-메일이다. 식품 스팸은 1937년 미국 호멜푸즈 회사가 훈연한 햄을 통조림에 넣어 만든 상품의 상표다. 상금 100달러를 걸고 공모한 'Spiced pork and ham'의 머릿글자다. '식품'으로 태어난 스팸이 어찌해 생뚱맞게 '쓰레기 메일'의 뜻도 가지게 되었을까. 1970년 12월 영국 BBC의 코미디 식당풍자극에서 비롯됐다. 노부부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려 했으...
청주시 남일면 척산리 청주~신탄진 간 국도 인근에 '벽창호'라는 가구점이 있다. 가구점 간판으로 내 걸기에는 뭔가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벽창호'를 '벽에 바르는 창호지'쯤으로 알고 억지춘향으로 상호 명을 짓지 않았을까. 벽창호는 창호지와도, 가구와도 전혀 관계없다. 여하튼 가구점 간판으로 내 건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냥 넘어가자. 벽창호는 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킨다. 원래 '벽창우(碧昌牛)'가 변한 말이다. 평안북도에는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이라는 지역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지역의 앞 자를...
터미널(Terminal). 항공, 열차, 버스 노선 등의 맨 끝 지점 또는 많은 교통 노선이 모여 있는 역 등을 의미한다. 물리학에서는 '전기가 드나드는 전극(電極)'을 뜻한다. 컴퓨터 용어로도 쓰인다. 중앙에 있는 컴퓨터와 통신망으로 연결돼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처리 결과를 출력하는 장치인 '단말기'를 말한다. 외산이지만 우리글 국산처럼 아주 흔하게 쓰인다. 이 말은 시공간이 아주 멀고 먼 고대 로마신화에서 왔다면 믿을까. 로마신화에는 '테르미누스(Terminus)'란 신이 등장한다. 이 테르미누스 신은 '토지의 경계와 끝, ...
서방. 남편을 낮잡아 이르거나 성에 붙여 사위나 매제, 아래 동서 등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벼슬이 없는 사람의 성 뒤에 붙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서방은 한자로 '書房'이다. 글자대로라면 서방은 글을 읽고 쓰거나 보관한 공간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서재(書齋)'인 셈이다. 이 서재가 어떻게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걸까. 고려 최 씨 무신정권으로 돌아가 보자. 칼잡이들이 정권을 쥐고 흔든 지 47년이 지난 1227년 최우(瑀)정권은 권력을 잡았지만 무신들만의 정치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다 몽골침입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