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의 모태가 되다①] 손희순 청주 봉명초 교장
다문화학생 55.8%… 고려인 5~6세대
교육 3주체+지역사회 ‘한마음 한뜻’
학생 적응 돕기위해 한국어 학급 운영
언어강사 투입 아이들 변화 감지 시작
이중 언어 사용 장점 살리기도 공들여
교사 러시아어 배우기·생활 공유 앞장
언어·문화 존중하며 공감·소통 이어가

손희순 청주 봉명초 교장
손희순 청주 봉명초 교장

[충청투데이 김진로 기자] 2023년 12월 1일 기준 전교생 539명 중 다문화 학생이 전체학생의 절반이 넘는 55.8%(301명)를 차지하는 이색 초등학교가 있다. 이들 다문화 학생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러시아 또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 5~6세대다. 언어와 문화, 국적도 서로 다르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더 큰 꿈을 꾸는 아이들이 있다. 함께 배우고 밝게 빛나는 이곳은 청주 봉명초등학교다. 손희순 교장이 소개하는 봉명초의 함박꽃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봉명초의 교육 비전은 ‘행복 4중주로 제 빛깔을 찾아가는 함박꽃 이야기’이다. 행복 4중주는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등 4개 교육 공동체를 말한다. 이들 모두가 힘을 모아 교육의 품 안에서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제 빛깔을 찾아 함박꽃을 활짝 피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행복 4중주로 제 빛깔을 찾아가는 함박꽃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20년 손 교장이 이 학교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후부터다.

당시 봉명초는 외국인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많아 수업시간은 물론 생활지도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선생님들도 근무하기를 꺼리는 비선호 학교였다. 이에 손 교장은 부임 후 가장 먼저 언어의 장벽 허물기에 나섰다.

실제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언어였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1인 2교사제를 도입,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지원할 수업지원 튜터도 다른 학교와 다르게 러시아어와 한국어 모두 구사가 가능한 이중 언어 강사와 한국인 강사를 수업에 참여시켜 학생들에게 도움을 줬다.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하는 강사들은 주로 고학년 수업에 배치, 다문화 학생들의 수업 참여 및 학습 이해를 도왔다. 이들 강사들은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겪는 어려움을 실시간으로 돕기 시작하면서 다문화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언어 강사들이 투입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이면 복도를 서성이는 등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친구들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알려지면서 당시 3학급으로 시작한 한국어 학급은 올해부터 8학급으로 확대 운영할 만큼 인기다.

충북교육청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 몫 했다. 도교육청은 손 교장의 지원 요청에 러시아어와 한국어 모두 구사가 가능한 이중 언어 강사 8명과 한국인 강사 7명을 투입, 다문화 학생들의 수업 참여 및 학습 이해를 돕게 했다.

손 교장은 이중 언어 사용이 가능한 다문화 학생들의 장점 살리기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글로벌 역량을 배양하기 위해 2022학년도부터 교내 함박꽃 이중 언어 말하기 대회를 학기별로 시행하고 있다.

손 교장은 "2023년 교내 이중 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한 엘리자베타는 충북 이중 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전국 이중 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3위인 은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한 학기 근무도 힘겨워하던 교사들도 학생들의 꿈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는가 하면, 다문화 감수성 증진을 위한 수업사례와 생활지도 방법을 공유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최근엔 전국 각지에서 봉명초의 맞춤형 교육을 벤치마킹하려는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학부모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도 고민했다. 다문화 학부모와 선주민 학부모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다. 손 교장은 학부모 간의 소통을 돕고 다문화 학부모들의 한국 학교생활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부모 한글 교실을 운영했다. 특히 한국인 가정의 어머니와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가 함께하는 ‘함박꽃 모모(母母)’ 학부모 동아리를 구성, 다문화 학부모와 선주민 학부모의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손 교장의 계획대로 교육의 주체로 학부모가 적극 참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봉명초는 교육의 중요한 주체인 지역사회와 함께 협력하고 상생하는 교육생태계, 온 마을 배움터를 조성해 나가는 교육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손 교장은 "다문화 학생들이 봉명초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문화와 한국어만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언어와 문화도 존중해가며 공감하고 함께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때문"이라며 "글로벌 시대를 맞아 봉명초 졸업생들이 어떤 인재로 성장할지 기대된다"고 웃음 지었다.

김진로 기자 kjr604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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