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장

한국유교문화진흥원(한유진)은 공무원, 공공기관 리더들을 대상으로 유람일지(儒覽日誌)라는 선비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내년에 개최될 K-유교문화제의 주요 공간인 강경, 연산, 노성은 선비문화체험 프로그램의 산 교육장이다.

먼저 강경의 죽림서원, 임리정, 팔괘정에서 율곡 이이,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이 보여준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를 사색하면서 이 스승 존경 정신이 400년 후 강경고등학교가 주도한 ‘스승의 날’로 꽃 피우기까지 수백 년간 지속되는 문화의 끈질김을 느낀다. 연산의 돈암서원에서는 혼탁한 세상에 일신의 안위를 위해 물러나기보다는 진흙을 묻히면서도 나라를 경영해야만 했던 선비들의 고뇌를 통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일했던 율곡의 치인정신(治人精神)을 배운다.

노성으로 오면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치인(治人)을 만날 수 있다. 한유진 맞은 편에는 파평 윤씨의 구휼창고인 의창(義倉)터가 있다. 의창은 파평 윤씨 문중 학교인 종학당을 건립한 동토 윤순거가 400여 년 전에 "선비는 공부해서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돈이 있으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야 한다"는 율곡 선생의 뜻을 따라 춘궁기 마을 주민을 구휼하기 위해 만든 곡식 창고이다. 매년 수 백석의 곡식을 마을 주민에게 베풀었고, 이것은 조정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선비가 향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치인의 또 다른 모습이다. 또한 의창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명재고택을 둘러보며 ‘치인하지 않지만 치인하는’ 은둔의 치인방식을 깨달을 수 있다. 초가에 사는 스승이 안타까워 제자들이 뜻을 모아 기와집을 지어 드렸지만 정작 명재는 죽을 때까지 초가에서 살았다. 명재는 왕이 여러 차례 출사를 요구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종국에는 정승 벼슬까지 사양해 그를 백의정승이라 부른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신을 갈고닦아 인격 완성에 힘썼고 많은 제자를 길렀다. 권력에서 밀려난 기호 남인, 영남 남인과도 교류하면서 탕평을 주장했고 실학자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수기치인이 선비의 삶이라면 명재는 치인보다는 수기에 더 방점을 뒀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라를 다스리는 두 가지 방식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출사(出仕)해 조정에서 일하는 것이다. 율곡으로 대표되는 출사를 통한 치인은 아무리 어려워도 누군가는 국가를 경영해야 하니 암투와 모략이 난무하는 정치판일지라도 떠나지 않아야 선비의 올바른 삶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둘째는 명재처럼 올곧은 선비의 삶을 보여줘 후학들이 따르게 하고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출사하지 않았어도 올곧게 산 선비들이 향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교육에 힘쓰는 것은 은둔했지만 사실상 치인하는 선비의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이처럼 논산은 출사와 은둔이라는 각기 다른 삶의 방식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쳤던 선비들을 한나절 거리에서 한꺼번에 보고 배울 수 있는 유교의 본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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