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유성구청장

영화 ‘오펜하이머’가 관객 31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을 목표로 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인물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이 투하되면서 일본은 항복했고 2차대전도 막을 내린다. 인류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동시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대가로 독수리에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오펜하이머도 대량파괴 무기를 개발했다는 죄의식으로 고통받는다. 이에 더해 공산주의자이자 소련의 스파이로 몰린다. 우여곡절 끝에 간첩 혐의는 벗었지만 이후 어떤 공직도 맡지 못한다. 매카시즘의 광기가 미국을 덮친 시절이었다.

1920년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항일 무장투쟁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이어진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은 가장 빛나는 성과를 거둔다. 독립신문은 일본군 전사자가 120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두 전투의 중심에 홍범도 장군이 있다. ‘날으는 장군(飛將軍)’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나 그의 삶은 험난했다. 부인은 일본군 고문을 받고 옥사했으며 두 아들도 잃었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장군은 1943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기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재현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에 몰두하던 시기 미국과 소련은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싸웠다. 홍범도 장군이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시기 소련 공산당은 일본의 적이었다. 만주에서 연해주로 일본에 쫓겨 다니며 풍찬노숙하던 독립군은 소련에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상당수는 돌아오지 못했고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다. 보수·진보, 여야 구분 없이 그들을 기리는 이유다. 1975년 박정희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위패를 국립묘지에 안치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장군의 이름을 딴 홍범도함을 진수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마침내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유성구는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기념해 현충원로 일부에 ‘홍범도장군로’라는 명예도로 이름을 부여했다. 장군의 귀환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는 판단에서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펜하이머의 지인들은 미국을 떠나라며 그에게 외국행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로 거절했다고 한다. "젠장,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이야!" 홍범도 장군이 작금의 상황을 본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역사와 선열(先烈)을 부끄럽게 만드는 철 지난 이념논쟁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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